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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보는 기쁨, 돌보는 기쁨

 

작년 봄 <선 위에 선> 전시회를 마치고 축하 화분 들어온 것 중 하나를 사무실로 데려왔다. 이사하면서 이전 사무실에 있던 몇 개의 화분들을 다 정리했었다. 초록빛 식물이 언제 있었나 싶게 오랜 시간 빈 화분들로 방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이사 후 화분을 키울 엄두를 아예 내지 않았다. 동료들과 잘 돌보며 키워보자고 마음을 모은 뒤 데리고 온 화분은 ‘브룬펠시아 자스민’라는 꽃나무다. 보라색으로 핀 꽃이 하얀색으로 변하면서 진다. 보랏빛을 뽐내며 그득하게 피었던 게 언제냐는 듯 하얗게 변해 떨어진 꽃을 치우다가 문득 인생을 알려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싶었다. 봄이 지나고 꽃이 다 진 화분은 앙상하게 사무실 입구에 놓여있었다. 물을 주긴 했지만 겨울이 되니 이제 이파리도 다 떨어져 가지만 남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싶었다. 이번 봄 어느 날부터 줄기 곳곳에 잎이 솟더니 다 피어낸 꽃들은 아직 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에서 콩나물 키우기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실 점심식사에 자주 등장하는 콩나물이니 한번 키워볼까 싶기도 했지만, 매일 물을 주고 돌봐야 한다는 얘기에 마음을 접었다. 그러던 중 아래층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사무실에서 모종을 나눠줘 생각지도 않던 상추를 키우게 됐다. 손 간다며 저어하던 이웃단체 동료가 흙을 사오니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이곤 꾹꾹 눌러 심었다. 잘 자라라는 말을 들었나 싶게 쑥쑥 크나 싶었건만, 며칠 지나니 영 매가리가 없다. 같이 심었던 겨자채는 해가 뜨거워서인지 물이 부족해서인지, 주말이 지나 와보니 말라있었다. ‘꿀잠’ 사무실 옆 화단은 상추, 치커리, 고추까지 꽉 들어차서 텃밭이라 불릴 만하게 풍성한 것을 보니 미안한 맘이 들었다. 다시 생명의 기운이 솟길 바라며 물을 듬뿍 주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얼마 전 「쪽방신문」(홈리스행동 등의 단체들이 쪽방지역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 매달 만들기 시작한 신문)에서 동자동사랑방 주민들이 이번 봄 시작한 텃밭 농사 기사를 보게 됐다. <‘한 평’ 방 사람들의 ‘두 평’ 농사>라는 제목이었는데, “텃밭을 분양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는 쪽방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쏟을 일이 필요했다”라는 문구가 훅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둘 곳을 찾아 무언가를 키우곤 한다. 초록빛 생명을 보는 기쁨, 여기에 더해 공기정화까지 실용적인 이유도 동반한다. 내 경우에는 처음 홀로살기를 하게 됐을 때 한 평에 한 개의 화분이 있으면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화분을 계속 늘리다가 싹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동자동사랑방 주민들이 키우고 있다는 텃밭 소식은 생명을 키우는 것이 단지 잠깐 마음 둘 것을 찾는 일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 형편과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마음을 쓰고 쏟아야 하는 것, ‘보는 기쁨’을 넘어 ‘돌보는 기쁨’으로 마주할 때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식물 매출도 증가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대에 누군가와 관계 맺으며 서로를 돌보는 기쁨을 찾고 싶은 건 아닐까. 코로나19로 2020년의 상반기가 휘릭 지나간 것 같은 지금, 우리가 되돌리고 싶은 일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나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