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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김준섭 님을 만났어요

저는 ‘건축’ 하면 가장 가깝게 떠올리는 건축물이 집인데요. 현실에서 집이라는 건축물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가는 것이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다보니까 저에겐 관심 분야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후원인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건축에 대한 고민이 집에 대한 고민이자 도시에 대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들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건축을 공부해서 설계 일을 하다가, 작년부터 독립해서 전북 정읍으로 내려와 박스투박스 아키텍츠(boxtobox architects)라는 설계사무소를 시작한 김준섭이라고 합니다.

 

사랑방에 후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정치나 운동에 관심이 전무했던 사람이거든요. 예전에는 정치나 사회를 내가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책임질 수 없다고 여겼던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건축과의 설계실이 따로 있었거든요. 입학하자마자 독서실 같은 개인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는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하는 일인데, 제 자리가 정해져 있으니까 같이 건축 공부하는 사람들 말고는 대학에서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았죠. 동아리나 학생회 하면서 정치색을 띄는 친구들을 만날 일도 없고 오로지 비슷한 친구들끼리만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건축 공부만 하면서 지냈던 시절이었어요.

 

근데 건축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작은 건축물이라도 설계를 시작하면 이 도시에서 제 역할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죠.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 연장선에서 운동을 지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랑방이 눈에 들어왔고 후원하기 시작했죠.

 

건축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건축을 통해 어떤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계시는지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처음 건축을 공부할 때는 건축물을 오브제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건축가를 예술가처럼 생각했고요. 그림(설계)을 잘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엄청 중요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건축을 예체능에 재능 있는 사람이 유리한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공부를 할수록 건축이 굉장히 사회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단적으로 미술 작품과 비교해본다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안 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건축은 그럴 수 없죠. 건축주와 설계자가 결정을 해서 어떤 건축물이 들어서는 순간, 이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매일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구조물이 생기는 것이잖아요. ‘그 집이 미관을 해치거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떨까’를 생각하는 거죠.

 

건축을 설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설계한 건물이 아무리 미적으로 아름다워도 혼자 튀는 건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리면서 동시에 특징은 드러내는 건물이 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건축이라는 분야는 이런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조금 더 넓은 사회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그때부터는 이론과 역사가 필요한 순간이 오더라고요. 특히 여러 건축과 관련한 이론들이 서구의 역사나 철학과 연결이 되는데, 막상 저는 이걸 학교 다니면서 공부해본 기억은 없더라고요.

 

건축의 사회적 역할이나 고민을 담고 있는 건축물 중에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중적이고 유명한 건축물은 서울 인사동에 쌈지길이 대표적인 것 같아요. 쌈지길 건물은 2층부터 경사로로 쭉 이어져 있는데, 인사동길의 연속이라는 컨셉을 담고 있어요. 근데 또 살펴보면 그 경사로로 이어진 메인 쌈지길만 있는 게 아니고 1층에 앞쪽으로 작은 가게들이 쪼르르 놓여있죠. 이게 쌈지길의 건축가가 인사동과 마주하는 방식이거든요. 인사동은 작은 가게들이 많은데 덩치가 큰 쌈지길 건축물이 덩그러니 들어오면 주변과 맥락을 형성하지 못하는 건물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작은 가게들부터 시작해서 쭉 이어지는 길을 놓고 큰 쌈지길이라는 건축물은 뒤에 배치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죠.

 

또 최근에 재밌게 본 건축물은 용산에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회사의 사옥이에요. 그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그 건물은 도시에 대응하지 않고 네모반듯한 정사각형 유리 건물을 지었단 말이에요. 건물에 접하는 도로가 크든 작든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서울은 앞으로도 개발될 것인데, 어떻게 개발될지 예상할 수 없고 앞으로의 서울을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서울의 특징이기도 한데, 외국 건축가들은 서울을 기댈 곳 없는 도시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가령, 유럽 같은 경우는 도로들이 한 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와 맥락을 갖고 있고, 이걸 소스 삼아서 건축의 아이디어가 나와요. 그런데 서울은 그런 맥락을 잡기가 정말 어렵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예상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신도시 위주의 도시계획과 기존의 도시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무시된 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또 그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서울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아직 도시적인 담론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질문드릴 텐데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직접 지으신 것이잖아요. 건축가로서 자신의 집에 대해서 평가해보면 어떠신가요?

 

일단 6개월밖에 안 지내서 사계절을 다 보내봐야 알 것 같아요. 건축물로만 생각하면 제 욕심으로는 75점? 사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거든요. 내가 건축주, 건축가면서 시공까지 같이 하니까 재료 하나를 선택할 때도 쉽지 않더라고요. 시공하는 입장에서 비용을 생각하면 좀 더 싼 재료를 선택해야 하는데, 건축주 입장에서는 그 선택이 내가 계속 살아갈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 더 좋은 재료를 쓰고 싶고, 선택을 못 하는 것이죠. 돈도 생각해야 하고.

그럼에도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설계자로서 도면을 그리는 선의 책임감이 달라진 거 같아요. 특히 공공 건축을 설계할 때는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까 도면을 그리는 체감이 달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여러 입장에서 직접 집을 지어보니까 보이는 게 달라진 거죠.

 

△인스타그램 @boxtobox_architects

 

직접 지으신 집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중앙 정원이 두 개가 있는 집인데, 그만큼 창문이 크거든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해가 넘어가는 것에 따라 집이 달라 보이는 재미가 있는 집인 것 같아요. 또 마당이 아니라 중정이다 보니 시야가 펼쳐져 있지 않아서 편안함을 주는 집이기도 하고요. 쉽게 이야기하면 옷 벗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무척 넓은 집인 것이죠.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으로 이주하셨는데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일단 사업을 시작했으니 돈을 벌어야죠. (웃음) 시골에 내려온 만큼 이 동네 분들하고 잘 지내면서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동네에서 제가 가장 젊은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로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궁극적으로는 제가 지내는 정읍에서 설계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조금 오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동네의 공공건물을 설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령 주민센터 같은 건물의 공모가 나오면 조금 더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거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사랑방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사 오고 나서 아직 정신이 없어서 사랑방 소식지도 제대로 못 챙겨 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사랑방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를 보낸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앞으로는 사랑방 활동도 더욱 잘 챙겨보는 후원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