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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O.S.T

가원

첩보물 중 ‘본’ 시리즈의 박진감은 단연코 으뜸이다. 영화는 제이슨 본 이라는 미국 CIA 요원이 작정 수행 중 심각한 부상을 입고 기억을 상실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이 되살아난 날, 그는 자신이 국가와 조직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뒤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시작한 조직에 대한 복수가 통쾌한 승리를 거둘 때마다 등장하는 그 음악, 도입부에 흐르는 일렉기타의 선율을 들으면 나는 왜인지 모르게 비장해지고 제이슨 본 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게 된다. 결전을 앞두고 비장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들어보시라. 이 노래 Extreme ways.

 

Blackway & Black Caviar - "What's Up Danger"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OST)

남성 히어로무비의 물량 공세와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소년의 성장드라마 모두가 지겨워질 때쯤 극장에서 환호하며 봤던 영화. 대부분 힙합으로 채워진 다른 트랙도 너무 좋지만, 흑인&라티노 청소년인 마일즈 모랄레스가 다른 평행우주들에서 건너온 다양한 스파이더들을 만난 후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치고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하는 장면부터 터져 나오는 이 곡은 정말 최고... 캐릭터와 서사는 클래식하지만 시각적 효과와 편집, 음악까지 합쳐지면서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압도적으로 재밌고 멋졌다. 아직 못 본 분이 계신다면(온라인에서는 가격도 많이 내려갔네요), 스피커는 꼭 최대볼륨으로.

 

세주

문득 떠오른 곡은 When you belive..고1 겨울방학때 봤던 이집트 왕자의 OST이다. 영화는 실사가 아니고 애니메이션인데, 사실 영화보다 OST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이라고 생각된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캐리의 듀엣곡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OST였다. 소년의 마음에 깊이 들어왔던 노래.ㅋㅋㅋ 영화를 보고나서 OST CD를 바로 구입 했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추천곡을 타고 들어가다가 다시 오랜만에 들었는데, 그때의 감성이 다시 살아나서 너무 행목했다.

 

미류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를 처음 들은 건 오래전 살던 동네 바(bar)였다. 탁자 세 개가 겨우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가게. 술은 음악을 도울 뿐이라는 듯, 주인장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던 곳에서 언젠가. 건조하게 튕기는 기타의 짧은 전주를 지나, 어떤 여성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자-이 그루- 데-바- 오-ㅗ-ㅁ(Jai Guru De Va, Om)이라는 주문을 외더니, 무엇도 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그 무엇도 그럴 수 없다고 되뇌는 목소리에 홀딱 반했더란다. 내게 필요한 주문이었을까. 비틀즈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싱어송라이터의 이름이 피오나 애플이라는 걸 주인장에게 들은 후 열심히 검색해보았더니, 영화 <플레전트빌 pleasantville>의 OST였다. 그 음반 겨우 구하고, 그 영화 겨우 구해서 봤는데, 남는 건 노래 한 곡뿐. 하지만 그 수고가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지금도 주문이 필요할 때면 나는 마음 속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정록

요즘 마지막 시리즈가 절찬 상영중인 '왕좌의 게임' 메인 테마곡. 보통 드라마나 시리즈물을 볼 때 앞부분은 막 넘어가는데 왕좌의 게임은 꼭 보게 된다. 음악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프닝에 나오는 드라마 무대를 형상화한 장치들의 움직임이 너무 멋있어서다. 누군가는 실물로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냥 CG는 아닐 것 같은데. 나에게 메인 테마곡이 들리면, 착착착 하면서 올라가는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민선

스토리보다 OST가 먼저 떠오르는 영화들이 몇 개 스쳐갔지만, 내 인생의 '첫 번째' OST로 지금도 강렬하게 남는 것은 <아기공룡 둘리>다. 카세트테이프 A면에는 둘리가, B면에는 까치가 있었다. A면이 끝나면 자동으로 B면으로 넘어가는데 그때마다 난 다시 둘리를 듣기 위해 되감기하곤 했다. 나중엔 소리가 늘어질 정도로. 그 시절로 되돌리듯 또로록 구슬 굴러가는 소리로 경쾌하게 시작하는 대표곡 '요리보고 조리봐도'나 '비누방울'도 좋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건 '형아 가지마'라는 슬픈 노래였다. 둘리에게 못되게 굴기도 했던 희동이가 사라진 둘리를 그리워하며 울 때 나오던 노래. 내가 둘리, 동생이 희동이로 역할 놀이를 하다가 그 노래를 틀고 떠나는 척을 하면 동생은 늘 울음을 터뜨렸다. 그걸 재밌다고 반복했던 나도 참 못됐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

 

디요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OST도 많다. 하지만 Original Soundtrack이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이라는 작곡가의 영화 음악은 꼭 들어보길 추천! 이 사람이 음악을 맡은 영화를 보면서 귀를 쫑긋하고 세워보시면 평소 영화 감상에서 느끼던 재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으실 겁니다.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