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인권운동>은 계속된다

인권운동의 고민을 담은, 그러나 갑갑함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틈새를 열어내는, 조금 긴 호흡의 글들을 내보일 매체가 필요하다 - 는 논의가 작년 초부터 진행되었다. 비슷한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잡지의 상을 잡기 위해 여러 차례 회의를 했고, 방향을 정한 후로는 창간호가 다뤄야 할 주제와 내용에 대한 토론을 다시 수차례 했다. 그렇게 낸 잡지의 제목이 <인권운동>. 용감하다며, 누군가 물었다. 팔 생각은 있는 거냐고.

살 생각뿐만 아니라 읽을 생각 있는 사람들이, 그보다 많은 '이미 읽은' 사람들이 모였다. <인권운동> 집담회였다. 이야기를 먼저 열어줄 분들을 따로 모셨다. 낙타(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용석(전쟁없는세상), 이진희(장애여성공감), 호연(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잡지에 실린 다섯 개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여러 고민을 나눠주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2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주었다. <인권운동>이라서 기꺼이 찾아와준 것이리라.

이야기들이 오가며 가장 진하게 확인된 것 역시 우리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혼자 어렵고 막막한 것이 아니었음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끼며 위로 받았다고 고백했다. "울컥 하면서 위로받았던 문장들"을 낭독하는 시간을 제안한 이도 그랬으리라. 누군가는 "긴 호흡의 글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고 했고 누군가는 "쫓아가면서 읽게 되는 글"이라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잡지에 실린 글들은 여러 각도에서 인권운동이 직면한 현재를 짚었지만 질문을 펼쳐놓은 만큼 뚜렷한 주장을 내세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통의 질문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위치나 경험의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글"이라며 소란을 기대한 사람도 있고 공통점을 더 발견한 사람도 있었다. 여러 명이 모여 같이 읽기로 했다는 이들도 있었으니, 글 하나를 얹은 사람으로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야기 중 내가 글에서 제안한 '함께 실패하는 연대'도 몇 차례 언급되었다. 현실이 변하는 속도를 운동이 쫓아가지 못할 때 안전한 성공을 목표로 삼는 -기존의 담론에 기댄- 운동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실패를 목표로 함께 삼는 연대로 세력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실패야말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볼 수 있게 하니까. 대충 이런 생각이었던 건데 토론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활동가들과 토론하면서 다소 막연하게 넘어갔던 점들을 짚어보고 싶었는데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게도 명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차분하게 정리되기보다는 고민들을 끌어앉히느라 애쓴 글이었다. 그러니 읽었다는, 읽겠다는 사람들에게 미안함만큼이나 고마움이 크다. 역시 <인권운동>인 덕분이다.

누군가는 인권운동을 준거집단으로 삼고 싶은데 '인권운동'은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라며 이런 과정의 중요성을 짚어주었다. 공동의 언어와 기억을 만들어내는 노력. 그리고 누군가는 글에 실린 질문들을 각자의 자리로 옮겨가 응답을 만들 각자의 역할이나 몫에 대한 고민도 나눠주었다. 누군가는 기획부터 집필까지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점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했는데, 앞으로 편집위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활동가들의 공동작업이 될 것을 기대하게 했다. (참고로, 집담회 이후 편집회의에서 후속 읽기모임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인권운동이 놓인 현실. 무엇이 곤혹스러움을 낳는가. 익숙한 언어들이 어떻게 미끄러지고 있는가. 인권운동은 어디쯤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서 누가 인권의 언어를 만나려고 하는가. 질문들을 품고 <인권운동>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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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운동+나무연필 <고통, 그리고 동시대인>

 

일시 | 2019년 3월 29일(금) 저녁 7시 반

장소 | 책읽는 사회문화재단 강당

(서울시 종로구 동숭3길 40)

사회 | 류은숙 (<인권운동> 기획편집위원)

패널 |

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필자)

김일란 (<공동정범> 감독)

유해정 (<밀양을 살다> 공동필자)

신청 링크 |

http://blog.aladin.co.kr/culture/1071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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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운동> 함께 읽기

 

일시 및 내용 |

4월 17일(수) 저녁 7시

'이야기에 기대어 말을 이어간다'(류은숙) + '변혁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정정훈)

4월 24일(수) 저녁 7시

'정체성 정치, 교차성 정치, 인권의 정치'(나영정) + '평등에 거듭 도전해야 한다면'(미류)

장소 | 인권연구소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