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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더는 국가가 삶과 미래를 강탈하지 않길 바라며

밀양 765kV 송전탑 인권침해조사활동을 함께 하고
민선

밀양의 소식이 닿기까지

“국가가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강탈했다”

7월 3일 밀양 765kV 송전탑 인권침해조사 보고회에서 낸 결론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지난 5월 20일 한전의 공사 재개로 밀양에서 들려온 소리는 너무도 절박했습니다. 강아지도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너무도 일손이 바쁜 농번기에 재개된 공사, 평생 농부로 살아온 할매 할배들은 농사일을 뒤로 하고 이른 새벽 깊은 산속 현장을 구부정한 허리로 올랐습니다.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의 위압적인 물리력에 맞서 알몸으로 저항하는 할매들의 모습은 발걸음을 밀양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밀양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은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결 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최종 통보나 다름없던, 그조차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주민설명회가 열린 직후인 2005년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있었다는데,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 대한문 옆에 차려진 ‘함께 살자 농성촌’에서 처음 밀양 할매들을 만났습니다. 9년여의 싸움, 그로 인한 고됨의 무게가 무척이나 클텐데 밀양 할매들은 주변에 함께 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부지런히 다니셨습니다. 울산 현대차 철탑 농성장, 아산 유성기업 농성장, 그리고 대한문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향소... “늙은 우리도 이렇게 싸우는데 젊은 너희들은 더 잘 싸울끼다” 할매들의 이야기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밀양 할매들을 만나다

5월 20일 공사 재개 후 전쟁과 같은 나날이 밀양에서 계속되는 상황에서 5월 24일~25일 밀양으로 향하는 탈핵버스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잠깐에 불과하지만 밀양 할매들의 옆에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저녁 7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자정이 넘어 밀양에 도착, 마을회관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현장을 향해 새벽 3시부터 오른 산길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원래부터 길이 나있던 것이 아니라 할매들이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만들어진 길, 좁은 산길을 함께 오르면서 점점 말도 줄어들고 땀에 푹 젖었습니다. 저 길을 할매들이 오를 수 있나 싶었는데, 나무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할매들이 하나둘 올라오셨습니다. 고무신에 물 한통, 점심과 저녁끼니를 해결할 도시락이 담긴 주머니를 들고. 등산화를 신고 물도 여러 통 챙기면서 단단히 준비했는데 참 민망했습니다. 그리고 속상했습니다. 투쟁이, 그 고됨이 할매들에게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왜 이들의 삶이 이렇게 바뀌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맘이 들었습니다.

현장은 이미 나무들이 많이 베어져서 뙤약볕이었습니다. 공사를 재개하면서 헬기로 이동시킨 포크레인과 철탑 자재가 철탑 부지로 쓰기 위해 파헤쳐놓은 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할매들은 포크레인 주변으로 모여 앉아계셨어요. 뜨거운 햇살을 피할 작은 그림자조차 없는 그곳을 종일 그렇게 지킨다고 했습니다. 현장 사무소가 출입을 제한했기에 할매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습니다. 도시락을 드시러 잠깐 그늘 쪽으로 나온 할매들은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니 좋다며 백만불짜리 미소를 건네주셨습니다. “밥 묵었나” “그래도 또 묵어라” 하루 끼니 도시락으로 싸온 직접 키운 고추, 직접 담근 김치와 장아찌, 콩밥... 백만불짜리 식사에도 초대해주셨습니다. 그날 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산을 내려가기 전에 인사를 나누던 시간, 찰라 같은 시간을 옆에 딱 붙어있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있었는데도 그것이 할매들에겐 또 위로였나 봅니다. 토닥토닥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말하던 할매들의 눈물.

▲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장에 올라가신 할머니들

밀양 인권침해 조사활동을 하며

밀양에 다녀온 인권활동가들이 이번 공사 재개 과정뿐 아니라 9년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겪었던 인권침해 문제들을 정리해서 알려보자는 목표로 인권침해조사단을 꾸렸습니다. 6월 다시 현장조사를 가고, 정보공개청구 및 기존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7월 3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은 사랑방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29일, 40일 동안 공사 중단을 하고 전문가협의체를 운영하게 되면서 당장 밀양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9년 동안 요구해온 타당성 검토가 ‘이제야’ 도마 위에 오른 만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협의체 기간 절반이 지나도록 한전은 제대로 자료 제출조차 안했고, 국회는 ‘밀양법’이라며 지원법 통과를 밀어붙이려하여 밀양 주민들이 삶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보상 문제로 일축하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오늘까지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과정이 없었고, 주민간 마을간 갈등을 유발하면서, 그간 공사과정에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모욕해왔고 결국 극심한 폭력에 한 주민이 분신자결하는 일도 있었지만 한전과 시공사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경찰은 이 과정에서 중재 역할은커녕 한전 비호세력으로 공권력을 남용했으며, 국회와 정부는 이 모든 상황을 방치했다는 것이 인권침해조사결과 요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월 8일로 전문가협의체가 종료되면 불도저 한전은 다시 공사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밀양 할매들이 더는 목숨을 거는 절박한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고, 농민으로서의 일상을 되찾으려면 어떤 굽이들을 또 지나가야 할까요? 그 굽이굽이에 우리의 마음과 힘이 단단하게 함께 고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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