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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자원활동가의 일기] 묘한 희열

벌써 2년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000년 늦여름, 우연히 인권영화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인권'과 '영화'라는 평소 관심 가던 두 영역의 만남이었기에 곧장 전화를 걸어 자원 활동을 신청했다. 대학로 구석구석에, 몇 시간 뒤면 바로 떼어질지도 모르는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고 영화제 기간에는 소리 지르면서 뺏지나 자료집 등을 팔기도 했다. 내 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의미 있는 활동에 그저 며칠 참여한다는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깊은 고민 없이 이듬해 1월 성큼 인권운동사랑방 문을 두드리고 영화제에서 상시적인 자원활동을 하겠노라 공언해 버렸다.

영화제에서 배급하는 비디오 테잎에 라벨을 붙이고 테잎과 문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 등이 당시에 주요하게 하던 일이었는데, 하루는 날을 잡고 자그마한 영화제 사무실(일명 '골방'이라고 불렸던)을 온통 노오란 페인트로 칠했던 기억도 난다. 손을 놀리는 일이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영화제가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업무들이라는 걸 알았지만, 솔직히 그런 일들만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살 휴학생이었던 당시에는, 사무실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수다를 떠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 아직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앞날을 걱정하던 시절이 아니었던 지라, 사무실에 계속 출입을 했다.
그러던 중 3월이었던가. 영화제 사무국에서 한번 자원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영화제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뭔가 스스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터라 귀가 솔깃해졌다. 지금까지 한 달에 한두번씩 온라인 상으로 나가고 있는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온라인 상에서 인권영화제의 소식들을 외부로 알려 나가는 작업은 물론, 인권과 관련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국내외 작품들에 대한 평을 싣기도 했다. 여전히 많이 미흡한 지라, 여러모로 창피한 것이 사실이지만, '울림'을 만드는 일이 실은 지금까지 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다.

현재 영화제는 한 명의 상근자와 몇 명의 자원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권운동사랑방의 여타의 활동과는 좀 다르다. 우선 스텝 자원활동가들이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가 시작하기 3-4달 전부터, 회의에 결합하는 방식을 취하는 한시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작년부터는 프로그램팀, 홍보팀 등을 꾸려서 나름대로 업무를 분담하여 자원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무적인 회의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자체적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개별화되어 있는 자원활동가들의 활동에 한계가 따른다. 자원활동가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고민을 키워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참여가 지속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 여러모로 안타까움이 크고 반성도 된다. 인권영화제는 인권 교육을 목적으로 시작되어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올곧게 뜻을 실천하며 과거에 비해 안정적으로 뻗어 나가고 있지만, 그 너머에 존재하는 조직 시스템은 너무 취약한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온갖 고민거리만 싸안고 인권영화제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인권과 영상 간의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극히 상업적인 메카니즘 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들만이 제작되어 다양한 영화에 대한 접근도가 낮은 국내의 영상 문화 지형에서 인권 영화제에게 던져진 역할은 여전히 절실하다. 더불어 각계 노동, 사회 단체 등지에서 영상 운동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활용 마인드가 아직은 부족한 듯 싶어, 인권과 영상을 매개로 하는 인권 영화제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 상영관 앞에 있노라면, 뿌듯함은 물론이고 그 기간 동안 발랄해지며 묘한 희열을 느낀다. 올해도 다음해에도 인권영화제 꼬옥들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