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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육아로부터의 사색...

#1.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제 곧 결혼해야지’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 아이 하나 가져야지’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한 명 생기자 나에겐 ‘둘째를 가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곳곳에서 들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둘째를 가지는 것은 지금 꿈도 꾸지 않고 있지만, 내가 둘째를 갖게 되더라도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또 어떤 요구를 강요받을지 나는 사뭇 두렵다.

#2. 지금 27개월째인 우리 아이는 이제 제법 언어의 유희를 아는 듯싶다. 한결 “아빠”; 범용 “네”; 한결 (좀더 크게) “아빠아”; 범용 (좀더 크게) “네에”; 한결 (목청을 높여) “아빠! 아빠 소리 안 들려”; 그러면 나는 한결이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대고, 목청에 잔뜩 힘을 주고서 “네에. 이제 아빠 소리 들려” 하고 말한다. 그때서야 한결이는 “네” 하고 차분하게 답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아빠 소리 안 들려’란 표현을 구사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한결이가 발전하는 모습은 내게 더 없는 기쁨이다.

#3. 결혼은 나에게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평등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육아는 내게 새로운 시야를 선사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는 그것이 이 세상과 호흡하는 아이들의 치열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뿐만 아니라 아빠의 자상한 관심을 아이들이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느꼈다. 그것은 아이들의 인권이자 부모의 의무일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면서도 이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는 길이다.

#4. 아이가 없을 때만 해도 나는 집에 쉬러 갔다. 집은 나에게 바깥일에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며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집은 더 이상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한결이의 경우 적어도 두 돌 때까지는, 바깥일에 피폐해진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남은 에너지 모두를 한결이한테 쏟아 부어야 했다. 그렇다고 육아가 고통의 연속인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육아가 다른 무엇보다 힘들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5. 육아를 하면서부터 나는 소위 바깥일과 집안일, 즉 공ㆍ사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바깥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자는 주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육아는 나의 바깥 일정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한결이가 필요할 때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육아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바깥(공적인) 일이 집안(사적인) 일에 의해 통제될 때 보다 바람직한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집안일이 항상 부차시될 때 뿌리 깊은 공사 구분과 가부장적 위계는 결코 극복될 것 같지가 않다.

#6. 내 생각이 지나치게 가족 중심적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누구나 친밀함을 가장 우선시하는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문제는 이 사회가 그 권리를 이성애와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에게만 제한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포함하여 친밀함을 가장 우선시하는 다양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 그 공동체의 행복을 위하여 소위 바깥일은 축소될 필요가 있고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7. 올 초까지만 해도 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인권운동사랑방에 나와 활동을 했다. 아내가 육아로 인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서, 나머지 사흘 동안 내가 생계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내가 경제활동을 재개한 상태여서 내가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부담은 다소간 줄어들었다. 그래서 매일 인권운동사랑방에 나오지만, 저녁때면 어김없이 귀가해야 한다. 아내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내가 한결이를 돌봐야 한다. 이런 사정을 인권운동사랑방은 인정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이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보다도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8. 방금전 한결이가 씨리얼에 우유를 말아달라고 했다. 자기가 숟가락질을 하며 거의 다 먹었다. 씨리얼 몇 알이 그릇에 붙어 있길래, 내가 한결이 숟가락을 가지고 남은 씨리얼을 싹싹 긁어주었다. 그런데 한결이는 끝까지 자기 힘으로 씨리얼을 먹고 싶었는지 이러한 내 행동에 수가 틀렸나 보다. 몸을 뒤로 넘기며 아우성이다. 내가 뭐라고 달래도 막무가내로 아우성이다. 결국 나는 달래길 포기했고, 한결이는 엄마를 찾았으며, 아내는 한결이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환한 미소를 내게 날렸다. 그 미소의 의미는 용서일까, 화해일까, 아니면 잊어버림일까?

#9. 육아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인간관계에서부터 사회질서와 체제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뒤집어 보게 한다. 육아로부터의 사색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사색은 소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경험으로만 국한되어선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