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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비순환무한소수

비순환 무한소수
영훈 (영화제 자원활동가) http://old.sarangbang.or.kr
(전략) 앞에서도 말했듯이 ⅓은 0.333...이다. 이처럼 3이라는 숫자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순환(循環)무한소수>라고 부른다. 이것은 무한소수로 표현되는 모든 분수에 대해서 성립한다. 가령 5/7를 무한소수로 나타내면 0.714285714285714285... 가 된다. 이 소수를 잘 보면 714285라는 숫자가 한없이 되풀이된다.

- <0의 발견>, 요시다 요이치 著, p82 中


`다함께 외쳐볼까요! 십~ ,구~, 팔~ ...`

아나운서가 굳이 자기가 리더인 양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종로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이미 카운트다운을 큰 소리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하나`를 외친 후 함성을 질렀고, 거리는 보신각의 종소리와 함께 폭죽으로 뒤덮였다. 아나운서는 2006년 새해인사를 건넸고 나는 TV를 꺼버렸다.

`지겨워`

나는 강제로 26살이 되어버렸다. 짧은 한숨과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문득 뫼비우스의 띠가 떠오른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건가 알 수가 없다. 어제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라며, 아마 내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장국영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나 역시 더 이상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다 끝나가네.`

2007년의 5월의 어느 날, 10회 인권영화제 6일차 마지막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한 활동가와 나는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인 채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종로거리의 풍경으로 시선을 향한다.
`영훈씨는 이제 뭘 할 생각이야?`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요.
` `감독님들이 소개해준 단체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어?`
`모두 거절했어요.`
몇 달 동안 있는 힘을 쥐어짜냈던 만큼 그저 인권영화제가 폐막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작 이틀 후에 끝나버린다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나는 이걸로 된 것일까.
`당신은요?`
그 활동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의 눈을 보면서 이 사람은 말 그대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 개월간 함께 일하며 인권영화제를 관통하는 그의 기획력이나 추진력, 배려 등을 지켜보면서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의 눈빛, 손짓, 말들을 그저 동경하며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닮고 싶었고,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이제 어디로 갈지 궁금했다.

`인권영화제가 마무리되면, 다른 인권활동들을 해 볼 생각이야. 새로운 무언가를 공부하면서 다시 시작할 것 같아.
근데 그거 알아? 아니, 나만 그런 건가? 스무 살에 보던 세상이랑 서른 살에 바라본 세상은 다르더라고. 또 서른한 살에 바라본 세상은 서른 살에 봤던 세상과는 또 달랐고. 난 말이지. 한살씩 나이가 들 때마다 내 자신이 또 얼마나 성장하고, 세상을 얼마만큼 깊고 넓게 바라보게 될지 궁금해져. 설레이기까지 하다니까.`

문득 나도, 내년 27살의 나는 어떻게 삶을 바라볼까 궁금해졌다. 한걸음 걷고 백걸음을 헤메일지라도 성장할 수만 있다면, 그 활동가가 바라본 세상을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볼 수 있을까.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도 그처럼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질 내일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2012년이 되었다. 어느덧 나는 그때 그 활동가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책임하고, 여전히 아무 생각없이 꾸준한 활동대신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가 1년에 한번 인권영화제 사진을 찍으면 나타나는 심령사진의 유령으로 살고 있다.
내가 없어도 당연히 영화제는 잘 돌아간다고 믿는다. 인권영화제의 특징은 이가 없으면 잇몸, 잇몸도 안되어 상영불가능일지라도, 어디선가 손들이 나타나 기어코 영화를 틀고 만다. 그것이 인권영화제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함에도 미안함 하나 없이 6년째 아무것도 안하는 나.

그저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도움을 인권영화제에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인권영화제를 통해 더 성장해야 한다는 점. 덧붙여 바란다면 그 것을 인권영화제의 이야기로 고스란히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

올해도 어김없이 인권영화제의 투쟁은 계속되고 나는 설렁설렁 인권영화제로 향한다. 그것은 지겨운 반복이 아닌, 같은 듯 다른 내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문득 인권영화제 사무실로 힘껏 뛰어가본다. 물론 그동안처럼 `아무 생각 없는`, 그런 의미로 힘껏.

P.S. 아, 올라가는 길은 급경사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