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을까?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한반도 비핵화, 평화의 요구인가

이쯤 되면 전쟁 위기에 익숙하다는 한국인들도 불안하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소식에 온갖 짜증 섞인 댓글들이 수백 개씩 달린다. 이번 기회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는 둥 이렇게 날뛰다가 미국한테 진짜 당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 아닌 걱정까지. 북한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넘쳐나는 댓글들 밑에 흐르는 기운은 불안이다.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기든 지금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래서 불안하다. 냉소와 외면, 조롱과 분노, 불안과 공포로 각각 다르게 드러나지만 우리 의지를 넘어선, 전장의 한복판에 인질처럼 잡혀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미 전쟁을 겪고 있다.

북한이 겪는 전쟁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 '제재의 최종결정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하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가 북한 사회에 가하는 충격은 엄청나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근대 분업사회에서 대외교역이 막힌 사회는 존속하기 어렵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겪었던 대기근은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립된 북한 사회가 직면해야 했던 현실이었다. 석유, 화학비료, 식료품, 의약품의 부족은 굶주림과 추위를 불러오고 적절한 휴식과 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 제재는 압박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잔혹한 공격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에 일본은 공포에 휩싸였다.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신문은 호외를 발행하고 신칸센은 비상 정차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아시아 주둔 미군의 군사훈련을 한국, 일본과 함께 최첨단 살상무기들을 동원해 매년 진행한다. 우리에겐 '훈련'이고 '연례행사'지만 북한에겐 눈앞에 실재하는 공포이자 폭력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보다도 호전적이며,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전쟁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나라다. 이라크 전쟁, 리비아 폭격이 우리에게 중동의 분쟁이었다면 북한에겐 현실이었다. 그러니 북한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다느니,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들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거들고 있는 처절한 전쟁 한복판에 있다.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을까?

북한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이들조차 문제의 원인을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서 찾는다. 북한의 선택에 대한 평가와 문제의 원인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 원인은 북미 적대관계, 정확하게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다. 이는 한반도 핵 위기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확인할 수 있다. 80년대 시작된 탈냉전 흐름은 오히려 한반도에서 핵 위기를 촉발했다. 미중, 미소 간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가 한중, 한소 수교로 이어졌지만 북한은 철저히 고립됐다.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 원자력안전협정을 체결하며 남북협상, 북미협상, 북일수교 교섭에 적극 나서지만 모두 실패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적대세력으로서 북한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도 북한에게 핵무기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협상의 지렛대 역할이 컸다. 2000년 북미 공동성명,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그 성과였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북한은 침략 의도가 분명한 전쟁 집단으로 인식된다. 탈냉전 이후 30여 년 동안 북한은 저강도 전쟁을 겪으면서도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목표로 일관된 행동을 해왔다. 자신들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면, 핵무기가 필요 없는 안보환경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전 배치 가능한 핵무기를 손에 쥔 지금도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북한이 정말 미국과 전쟁을 하고 싶겠는가? 미국의 공격을 받고 싶어서 핵무기를 개발했을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북한은 생존하려는 것일 뿐이다. 생존의 희망이 미국이 만든 동아시아 패권 질서를 흔든다는 점이 한반도 위기의 실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미국의 패권전략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은 북미가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행동을 일단 중단하고, 핵무기 동결부터 시작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합리적 요구처럼 보이지만 지난 30년을 돌아본다면 분명 실패할 프로세스다. 여느 때처럼 핵개발이 불러온 긴장고조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긴장수준을 낮출 것이다. 하지만 대북 적대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는 미국에게 이는 일시적-제한적 조치일 뿐이다. 핵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까지 바라는 북한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해 협상은 결렬되고 핵개발은 다시 시작된다. 최소한 북한에게 핵무기는 미국의 선제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적대정책은 충돌하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전제되지 않는, 핵보유국의 비확산 전략일 뿐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던 시기에는 핵보유를 막기 위한 수준의 협상이 진행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현재, 한반도 비핵화는 전쟁까지도 고려하는 강력한 비확산 전략으로 기능한다. 가장 강력한 유엔 제재가 실행되고, 트럼프가 유엔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말을 내뱉는 자신감은 '비핵화'라는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에 힘입어서다.

평화체제가 비핵화를 가능케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지금까지의 단계적 방식이 아닌 포괄적 협상으로 핵포기-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할지 모르지만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핵을 매개로 한 적대관계 해소는 요원해지고 핵능력을 고도화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박은 강력해질 것이다.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핵이 아닌 한반도 평화가 문제 설정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핵문제는 한반도 적대구조가 낳은 역사적 결과이며, 그 안에서 작동한다. 이 적대구조가 해소되지 않고서 핵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대구조의 해소로서 전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적대구조 해소로서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 주민의 요구로 국제사회에 울려 퍼져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정전협정이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정전협정의 소멸은 전쟁이 아닌 평화협정이어야 한다. 미국에겐 동아시아 군사패권 전략의 일부일 뿐이지만 남북한 주민들에게 평화협정은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핵에 붙들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자. 한반도 적대구조에 기생하는 비핵화를 넘어, 평화체제가 들어설 때 진짜 비핵화의 길도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