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중국에 가면 중국의 법을 따라라?

‘평등하고 민주적인 개방성’에 대한 질문

중국에 오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씩하나씩 생겼다.

먼저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 중국에 오기 전부터 고장이 나기 시작했는데 중국에 와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나버렸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멀고 낯선 타국에 와서 지인들과 연락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중요한 공지들을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입학을 전후로 해서 등록과 비자 관련 업무 등 중요하게 처리할 일이 많았는데, 휴대전화가 없으니 관련 정보를 받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우연히 입학할 단과대학에 들렀는데 마침 그날 하루가 단과대학 입학 등록일이어서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서 다행히 등록을 할 수 있기도 했다. 알고 보니 스마트폰 어플로 등록 관련해서 이미 공지가 된 상황이었다. 그 후로도 중요한 공지와 학사 관련 서류들까지(!) 스마트폰 어플로 공지되고 발송되었다. 그래서 서둘러서 새로 휴대전화를 마련했다. 쓰던 휴대전화 대신 좀 더 싼 중국 휴대전화를 알아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휴대전화까지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하게 쓰던 휴대전화를 새로 샀는데, 뭐가 문제인지 이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동기화가 잘 되지 않았다. 어플을 하나하나 새로 깔고 또 중국에서 필요 없을 것 같은 어플은 과감히 지우고 나서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통신사와 전화번호를 중국 회사와 번호로 바꾼 이후 아직도 문제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쓸 수 없던 프로그램과 어풀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은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 및 스마트폰 어플이 꽤 많다는 것이다. 중국에 오기 전에도 몇몇 프로그램과 어플은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사용하던 프로그램 중에서는 구글, 구글 지도 등 구글 계열 프로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사용할 수 없고, 텔레그램은 일부 인터넷 망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학교 공식 인터넷 망을 통해서는 접속할 수 없다. 그리고 카카오톡은 별 문제 없이 쓸 수는 있지만 전화번호가 바뀐 후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동기화가 안 되어서 각각 다른 계정으로 사용해야 하는 문제를 아직도 못 풀고 있다. 그리고 사진 파일을 보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또 메일에도 문제가 생겼다. 나는 주메일을 지메일(gmail) 계정으로 쓰고 있었는데 학교 공식 인터넷 망에서는 지메일에 접속할 수 없다. 부메일로는 다음(daum) 메일을 썼는데 다음 메일은 내가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 중국 메일에서 다음 메일로 발송이 안 된다고 했다. 휴대전화도 좀 이상한 상황에서 메일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중요한 공지를 놓칠 수도 있어서 큰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중국 국내 메일 계정을 하나 새로 만들고, 노트북 메일 계정에 이 새로운 계정을 추가하는 작업을 했다. 어렵게 어렵게 검색해서 찾아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지금도 이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별로 자신이 없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으로 한글 프로그램도 문제다. 중국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이 전혀 호환성이 없다. 내 컴퓨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다른 일반적인 컴퓨터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내가 글을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파일을 열어볼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논문 작성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들도 한글 프로그램과 전혀 연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익숙하진 않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그램을 써야 될 것 같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나에겐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새로 배우면서 적응해야 하는 큰 도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는 중국이 후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권위적이고 고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현실적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영향력과 여론 형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조치가 아닐까 하는 음모론에도 슬며시 마음이 갔다. 뭔가 중국은 폐쇄적이고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개방적인 접근을 통제하는 비민주적인 나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언론/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는 ‘인권의 언어’로 쉽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에는 분명히 사회주의 국가=폐쇄적이고 반민주적인 체제라는 공식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작동했을 것이다.

 

폐쇄의 기준은?

 

그런데? 구글, 지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이런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는 게 폐쇄적인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대체할 만한 다른 국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중국 국내 프로그램을 별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그램보다 한글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한다고 폐쇄적인 체제라고 할 수 있는지? 예전에 만났던 한 외국인이 한국인은 대부분 현대-기아차와 같은 자국 차를 타는 걸 보니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했던 말도 새삼 생각났다. 한국인들이 애국심이 대단해서 국산차를 타는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윈도우 컴퓨터 체제냐 아니면 애플 컴퓨터 체제냐(둘 다 미국에서 개발한 컴퓨터 체제다) 하는 선택만이 사실상 강요되고 있다고 한다면?(실제로는 윈도우 컴퓨터 체제로 거의 독점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이 더 개방적이고 한국이 더 폐쇄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는지?

 

미국법을 따르는 따르는데 익숙한 한국 생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미국의 법을 따르는 데 익숙해져서 구글, 지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글로벌 스탠다드’(미국 것인데 마치 우리 것인양)로 자연스럽게 여기며 그렇지 않은 환경에 폐쇄적, 비민주적이라는 딱지를 쉽게 붙였던 것은 아닌지. 한국에서는 별 생각 없이 미국의 법을 따르면서 중국에서도 왜 미국의 법을 따르지 않느냐며 불편하다고 투덜댔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는 찜찜함이 있다. 민주성과 개방성은 여전히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성’과 ‘개방성’의 내용은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점점 세계화되고 정보와 문화도 점점 국제화되면서 문화/정보 제국주의 역시 강화되는 시기에, ‘평등하고 민주적인 개방성’이라는 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깊게 고민해봐야 될 것 같다.

 

고속도로형 네트워크와 항공망형 네트워크

 

얼마 전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과학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 따르면, 네트워크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 가지는 고속도로형 네트워크(상대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서 보다 평등한)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항공망형 네트워크(자연스럽게 허브 공항이 생기는 것처럼 몇몇 집중점을 중심으로 위계가 형성되는)이다. 그런데 여러 분야와 사례에서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진행한 연구는 대부분의 네트워크가 고속도로형 네트워크가 아니라 실제로는 항공망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 네트워크는 필연적으로 몇몇 집중점을 중심으로 위계를 형성하는 항공망형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는 강한 가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인문사회과학 혹은 시민사회/운동사회에서는 네트워크라고 할 때 흔히들 가상의 고속도로형 네트워크를 전제로 하며 민주성, 평등성을 그 특징으로 생각하면서 정치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네트워크가 그리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와 조직이 좀 더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분배되는 네트워크 조직을 구상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고, 사실상 그럴 수 없음을 증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강한 가설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네트워크 체계를 조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예외나 다른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인상적인 자극을 받았는데, 이러한 가설을 승인한다면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소위 ‘개방적이고 평등한’ 세계 질서(한미일 동맹을 포함한)를 실질적으로는 어떻게 볼 것인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서의 평등과 민주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고민이 되었다. 우리가 가치로서 추구해온 여러 네트워크 조직도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생긴 것도 같다. 이상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비현실성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에 굳건하게 디딘 발을 떼지 않고 또 넘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덧붙이는 말>

저는 지금 역사학-중국근현대사를 공부하려고 중국에 와 있습니다. 4년은 넘게 걸릴 것 같은 긴 장정(長征)의 길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합니다. 많이 배우고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