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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이동은 ‘삶’이다

서울대학교는 학교 셔틀버스 외에도 학교 안으로 시내버스가 진입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셔틀버스와 시내버스는 중요한 통학수단입니다. 최근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에서는 서울대학교 내외부를 운행하는 저상버스 운행 재개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관련 동아리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2년 저상 시내버스가 학내로 진입하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학내의 과속 방지턱의 높이가 높아 저상버스의 바닥과 충돌이 일어나 고장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1년 만에 통행이 중단되었고, 현재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서울대학교 저상버스 문제는 1~2년 된 사안은 아닙니다. 2002년 전후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진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맞물려 문제제기가 되었던 사안이고, 당시 재학생들의 투쟁 결과 학교 측에서는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소형버스를 도입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구조상 건물 앞까지 들어 갈 수 있는 소형버스를 도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을 고려한다면 소형버스는 그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만 ‘대중’적인 교통수단에 장애학생들이 함께 융화될 수 있는 방법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하겠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식당에 밥을 같이 먹으러 가거나, 동아리방에 같이 어울려 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은 소형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는 충족되기가 조금 어려워 보입니다. 휠체어를 싣기 위해 개조된 소형버스에 친구들이 얼마나 같이 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제도적으로 같이 탈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동을 하려면 버스운행을 사전에 요청해야 하는데, 이동을 매번 정하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즉, 소형버스는 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학생의 학교에서 삶은 강의실의 단순 이동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학생들의 학내 활동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학교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서울대학교 셔틀버스의 내구연한(교체주기)을 볼 때, 학교 측에서 의지가 있었다면 학교소속의 셔틀버스도 벌써 저상버스가 도입되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상버스 도입을 하지 않고, 외부 버스회사의 저상버스 운행의 중단까지 불러오는 것은 과속방지턱을 ‘핑계’ 삼아 장애학생들의 ‘이동권’뿐만 아닌 ‘보편적인 삶에 대한 권리’를 고의로 침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표면적인 문제인 ‘과속방지턱’ 외에도 저상버스의 높은 가격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상버스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편리하게 해줍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리함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비용의 문제는 어느 정도 감수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시설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가장 쉬운 핑곗거리인 ‘과속 방지턱’의 경우, 이것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면 저상버스에 알맞은 높이로 재조정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비용의 문제로 진행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학내 사고율과 난폭운전을 줄이려는 방법을 찾기 위한 다른 노력을 한다면 과속 방지턱을 낮추면서도 같은 효과를 볼 수도 있고, 방지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장치를 새로 고안할 수도 있겠지요.

 

이제 서울 시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저상버스가 학교에서 운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서울대학교는 학내에 저상버스가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자체 셔틀버스도 저상화를 진행시켜야 합니다.

 

저상버스의 문제는 단순히 서울대학교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모든 대학, 병원 더 나아가서는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회사들도 점진적으로는 고려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또한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도 당장 저상화가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동은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