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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대한 열망을 놓지 말자는 약속의 걸음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 그리고 다시

2012년부터 시작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올해 4번째를 맞이했다. 7월 27일 제주시청에서 출발해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걸음을 이어온 행진단이 해군기지 반대 투쟁 3천일을 앞둔 8월 1일 강정마을에 모였다. 매년 행진을 준비하고 치르는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공사는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 번쯤 강정을 왔다 간 사람들은 공사도 다 끝나가는데 이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해군기지가 지어지는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커져만 간다. 그런 와중에도 누가 얼마나 올지 걱정을 하다가 막상 시작되면 기다렸다는 듯 모여드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매해 행진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몇 해째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이제,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 2년 전, 3년 전만 해도 이름도 잘 말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발자발 수다를 떨고, 청소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한 아이들이 이제는 같이 깃발을 들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도 있고, 용산 참사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있었다. 아픔을 헤쳐나가는 또 다른 강정의 모습들이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행진에 참여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만나지 않았어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고 제대로 된 특별법이 만들어졌어야 했는데, 아직까지도 바다 속에 식구들을 꺼내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다. 그 가족들이 이제는 강정까지 와 강정도, 세월호도 잊지 말자고 이야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오려고 했던 제주에 왔지만, 바닷가 근처에는 눈을 두지 못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슬픔이 땀처럼 배어 나왔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함께 걸으며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들자고 함께 외쳤던 행진단은 8월 1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 모였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서로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불볕더위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을 서로 격려했다. 늘 해오던 그대로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약속했다. 저 해군기지는 이제 곧 완공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화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말자고 굳게 손잡았다.

강정포구에서 보이는 해군기지 공사현장

▲ 강정포구에서 보이는 해군기지 공사현장


누구나 끝났다고 한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모이고 또 모인다. 전국 각지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아직 우리는 잊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한 함께 해 나가겠다고 외치는 듯하다. 이러한 힘들이 3000일을 함께 해온 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주민들이 버텨온 힘겨운 시간 속에 함께 연대한 사람들의 힘이 더해져 포기할 것을 종용당하는 이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3001일, 3002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날들을 포기하지 않으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아이들이 자라고, 현장을 지키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만나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다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함께 손잡고 걸어가자고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외치고 있다. 포기하지 말자고, 이 슬픔과 고통을 함께 기억하자고 말이다.
덧붙임

딸기 님은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