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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가톨릭청년회관에 갈 수 있을까

최근 성적 지향을 이유로 대관을 거부했던 종교시설에 질의를 하고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차별의 현장’을 직면해,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입장이 다른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보이지 않는 여러 움직임을 통해서, 작은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관은 승인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과정을 텍스트로 삼아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겪을 때 하나의 디딤돌이 되도록 하는 것일 테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곤혹스러웠음에도 변화를 허락하고 작은 디딤돌을 놓아준 가톨릭청년회관에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 싶다.

11월 24일(목)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틈새모임 워크숍.

▲ 11월 24일(목)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틈새모임 워크숍.


틈새모임 워크숍에 대한 대관 신청 불허

‘소수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틈새모임(이하 틈새모임)’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활동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이 모인 연대체이다. 다양한 소수자들의 주거권 현실을 담은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련 단체와 함께 하는 워크숍을 열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워크숍을 열기로 한 11월 24일로부터 한 달과 열흘이 남아있던 10월 14일,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요즘 인권재단 사람을 비롯해 인권단체들의 행사가 자주 열리던 홍대입구역 가톨릭청년회관이 교통이나 대관료 면에서 1순위였다.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관 규정에 따라 행사 일시와 내용(개요)를 간단히 적어 신청을 눌렀다. 무난히 대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차에 18일 회관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관 담당자는 통화로 대관이 불가하다고 하면서 가톨릭이 가진 동성애에 대한 입장 때문이라고 했다.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행사 내용에 적어낸 섭외 예정인 토론자 중에 동성애자단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당자는 가톨릭이 동성애에 대해 반대 입장인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가톨릭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옹호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반대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초 종지협(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7개 교단이 차별금지법 반대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하면서 반동성애를 표방하긴 했지만 그것은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 주도한 것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7개 교단(가톨릭의 경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결합)에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물었을 때에도 아무도 반동성애 입장을 재차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우리는 잘 모르니 한기총에 물어보라”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었다.

대관 불허통보서를 문서로 보내달라고 하여 이메일로 받은 통보서에는 “틈새모임의 행사로 인해 가톨릭청년회관이 ‘가정’ 및 ‘성’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듯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왜 동성애자 단체가 토론자로 포함된 주거권 워크숍이 그러한 오해를 살 우려를 주는 일인지, 그러한 우려를 가졌다는 이유로 대관을 불허하는 것이 정당한지, 가톨릭청년회관은 어떤 성격의 시설인지 토론하고 질의서를 작성하여 많은 인권단체들과 함께 보냈다. 면담요청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적극적으로 내부 토론을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전달하고 틈새모임과 가톨릭청년회관 관장 신부의 면담을 주선하려고 노력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틈새모임 대관 불허를 항의하며 대관취소를 통보했다.

다시 승인이 되기까지

3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틈새모임은 관장과 면담을 하였고 두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회관 측은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입장을 번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톨릭 교리에 비추어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동성애자가 사목의 대상이긴 하지만 교리와 일반 신자들을 고려했을 때 대관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했다. 우리는 교리가 동성 간 성행위를 불허하고 있으나 모든 이들의 차별에 반대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동성애자들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번 워크숍의 불허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을 동성애자로 밝히고 토론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이 회관은 동성애자의 출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대관을 하고 있는 회관의 운영을 보았을 때 차별받는 동성애자만을 금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톨릭 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었다. 하지만 면담의 과정에서는 둘 간의 입장을 좁히지 못했고 어찌할 바 없어 3일간의 시간을 더 갖기로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토요일, 회관의 메일이 도착했다.

회관은 “모든 이들의 차별을 반대하며 누구나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음과 동시에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거나 가톨릭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모임의 대관을 거부할 수 있다는 회관의 입장도 존중되어야 함”을 명시했다. 그러나 결론은 “틈새모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는 차원에서” 틈새모임의 워크숍 대관을 승인하겠다는 것이었다. 회관은 “가톨릭 교리에 근거한 동성애 반대에 대한 태도는 변함없지만(가톨릭 교리서 2357참조) 동성애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어떠한 부당한 차별도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에도 변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가톨릭 교리서 2358참조)”라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틈새모임의 입장에서는 흔쾌하지 않은 답변이었지만 이 답변이 가톨릭청년회관이 당장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우리의 워크숍을 회관에서 열게 되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남길까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이 점점 드러나고 사회적으로 혐오가 가시화되고 있는 요즘, 가톨릭청년회관의 대관 불허통보는 정말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보수기독교와는 다른 것을 기대하게 하는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섹슈얼리티에 대해 어떤 다른 종교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이고, 다른 종교보다 자율성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절대 다수의 국민이 가톨릭을 신앙으로 삼고 있는 멕시코시티와 아르헨티나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는 점은 교리보다 현장이 더 우선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많은 인권단체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점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 이유 중 하나다. 인권재단 사람의 정욜 활동가는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에 사회를 보러 가야 했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 시사회에 가고 싶었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나는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을 맡고 있지만 상담소 10주년 행사에 가지 못했다. 그 건물 앞에 서면 외벽이 무지개색깔로 장식된 그 건물이 나를 공격할 것 같았다. 그때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계단 앞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계단이 다 똑같은 계단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차별적인 계단을 만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일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종교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다. 그 시설이 지역사회에 개방되어 있고 대관을 하고 있는 경우 사회적인 역할을 우선에 두고 인권과 반차별이라는 원칙에 따라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교회가 진공상태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존재하며 사회구성원들과 숨 쉬고자 할 때 그것이 교리의 기본정신을 어찌 훼손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성소수자가 종교계에서 죄인 혹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 긍정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리 바란다. 또한 이 땅에 소외되고 차별받는 성소수자를 위해서 종교가 기본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여, 증오와 미움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존재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임

타리 님은 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활동가로, 틈새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