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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의 인권이야기] 동물원 키드

동물원과 생태체험관에 대한 고찰

호기심 많은 아이가 장수풍뎅이의 뿔을 집어 들어 손등에 올린다. 옆에 있던 아이가 자기도 만져보겠다며 풍뎅이를 재빨리 뺏어든다. 다른 쪽에서는 투명한 부스 안에서 이리저리 달아나는 수달을 잡으려고 대여섯 개의 팔이 작은 부스 안을 헤집고 있다. 수달은 구석에 몰려 코를 벌름거리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어른 팔뚝보다 더 큰 뱀이 두 아이의 어깨에 걸쳐진 채 버둥대고 있다. 좋은 각도를 찾으며 이리 저리 포즈를 요구하는 부모는 아마도 저 파충류가 내 아이를 물거나 먹이를 잡을 때처럼 몸을 옥죄면 어쩔까하는 생각을 잠깐 할지도 모른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매일 아침 출근길,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는 체험관의 홍보 영상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두 아이의 어깨에 걸쳐진 뱀은 부모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아이들을 물 일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기후로는 한반도에서 절대 볼 일이 없을 화려한 색의 대형뱀은 아이들의 여름방학 체험용 학습도구가 되기 위해 천적을 물리칠 강한 독과 날카로운 이빨을 빼앗겼을 테니까.

방학시즌이 시작되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붙는다. 우리도 점자도서관과 연계해 독서프로그램이나 동화 구연, 할머니와 함께 책읽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이런 체험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아마 모든 교육이벤트가 비슷한 의도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포스터에는 대게 ‘살아있는’, ‘흥미진진한’, ‘생생한’ 따위의 카피가 붙는다.

이런 체험은 과연 학습이 될 수 있을까?

동물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흔히 말하는 살아있는 학습을 위해 부모들의 대부분이 선택하는 곳이 동물원이다. 동물원을 체험한 어린이를 상상해보자. 화창한 어느 봄(여름, 가을, 겨울 상관없다. 동물원도 연중무휴니까)날, 엄마 아빠와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동물원을 방문한다. 입장하기 전에 새우깡을 몇 봉지 사는 걸 잊지 않는다. 아이들은 동물원에서 낙타와 호랑이, 기린과 사자를 본다. 반달곰과 치타를 보고 산양과 펭귄과 원숭이를 본다. 그리고 돌고래를 본다.

반달곰 무리들이 햇볕을 쬐며 누워있다. 아이들은 던져주는 새우깡을 두 발로 서서 받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기린은 사람들이 주는 빵 쪼가리, 과자 부스러기 같은 걸 받아먹느라 긴 목을 기울인다. 아이와 부모는 낙타 등에 올라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꺼이 몇 미터씩 서 있는 줄에 낄 것이다. 무기력하게 널브러진 치타의 얼굴 주변으로 파리가 웽웽거린다. 날쌔게 사냥하는 치타를 볼 수는 없어도 파리 정도는 ㅤㅉㅗㅈ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아이는 실망할지도 모른다. 운 좋게 재규어의 식사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사육사가 던져주는 잘 손질된 고기를 온순하게 받아먹는 모습은 볼 수 있다. 음악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는 물개와 돌고래를 끝으로 동물원 체험은 끝이 난다.

이제 이 아이가 만점을 기대하며 써 낼 체험학습 일기를 한번 상상해보자.
‘기린은 목이 정말 길지만 빵을 주면 받아먹을 수도 있다. 코끼리는 코로 못 먹는 게 없다. 산양 뿔도 만져 보았다. 치타가 뛰는 걸 보지 못해서 아쉽다. 낙타도 타 보았다. 낙타는 정말 재미있다. 돌고래 쇼를 보고 돌고래가 정말 똑똑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째서 이것이 살아 있는 ‘학습’이 될 수 있는가.

교육과 체험의 이율배반

치타는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사하라 이남의 반사막 지역,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서식한다. 포유류 중 단거리를 가장 빨리 달린다는 치타의 최고 시속은 110km/h(킬로미터/시) 전후이다. 하마는 스무 마리 이상이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볼 수 있으며 호수나 하천, 늪에서 생활한다. 낙타가 살 수 있는 곳 역시 아프리카, 아라비아, 고비사막, 몽골 같은 곳이다. 낙타 등의 혹은 (그 자리에 사람이 앉으라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모래땅을 여행할 수 있는 물과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동물원의 이 가공할 세계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철저히 배반한다.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이 동물들을 영상자료로 체험해야 맞을 것이다. (3D가 있으니 훨씬 더 리얼한 체험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모습을 강제로 빼앗긴 짐승들에게 새우깡이나 던지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는가. 동물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진행되는 체험학습관의 종류는 이름만큼 다양하다. 고래 생태체험관,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곤충·파충류 생태체험관, 자연생태 체험관…….

‘교육’과 ‘체험’에 이토록 괴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동물원으로 가고 파충류전을 보러 간다. 지금 당장은 작은 짐승이나 곤충을 먼저 만져보겠다고 서로 팔을 들이미는 정도이지만 아이들의 무섭도록 왕성한 호기심은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 기형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입장료만 내면 함부로 만지고 안아볼 수 있고, 돈만 내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거북이 키트를 사서 키울 수도 있으니 버리고 죽이는 것 역시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생을 키우는 주변의 모든 부모들은 예외 없이 다 한 번씩 거북이와 장수풍뎅이를 키운 적이 있다. 아이들이 싫증을 내거나 더 이상 학교에 관찰일기를 써 내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오자 그 생명을 ‘드디어 처분했다’며 속 시원해 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체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생명은 체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곤충이든 동물이든 답답한 시멘트 사육장이나 유리관에 가두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 저마다 각자의 삶의 터전이 있고 그 자체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경이로운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다가 올 겨울방학에는 이런 체험 프로그램 대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 도시에서 함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창살 사이로 던지는 돌이나 쓰레기를 받아먹기도 하고 또 우리는 그걸 보고 배꼽이 빠지게 웃지만 만약, 만약 저 짐승이 네가 배운 지식 그대로의 짐승이라면, 우리는 감히 그 앞에서 오금이 저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그때부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르치는 ‘살아있는 생생한 교육’이 시작될 것이다.
덧붙임

박혜경 님은 사회적기업에서 독서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