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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인권이야기] 먹을거리, 비싸면 어떤가?

먹을거리에 관한 책을 한 권 낸 탓에 가끔 그런 주제로 강연을 할 일이 있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일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인데다, 할 줄 아는 변변한 요리 하나 없는 주제에 먹을거리 강연이라니. 아무튼 한참을 횡설수설하다가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오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그런 건 비싸잖아요?”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조심스럽게 건강을 위해서 또 환경을 위해서 가까운 ‘지역’에서 유기 농업으로 재배한 먹을거리를 찾아보라고 권할 때마다 나오는 푸념이다.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취향은 여피족의 것이라는 빈정거림도 나온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직거래 등을 이용하면 대형 할인점에서 파는 것과 비교했을 때 꼭 비싸지만은 않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런 반문이 떠나지 않는다.

“비싸면 어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농민의 처지는 어떤가. 제과점에서 1000원짜리 빵 한 개를 사면 밀을 재배한 농민에게 얼마나 돌아갈까? 미국, 유럽의 통계 자료를 염두에 두면, 한 60원(!) 정도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농민이 가져가는 몫이 한 400원은 되었다고 하니, 지금 전 세계의 농민이 얼마나 부당한 처지로 몰렸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농민이 이렇게 참담한 상황으로 몰린 데는 나머지 940원을 독차지한 초국적 유통 기업의 횡포가 한몫했다. 그러나 대형 할인점에서 값싼 먹을거리만 찾는 ‘저가’에 중독된 우리의 책임은 없을까? 이른바 ‘통 큰’ 먹을거리 앞에서 우리가 길게 줄을 설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동네 가게 주인뿐만이 아니다. 여름 내내 땡볕에서 고생한 농민의 눈에서도 피눈물이 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계 소비 중에서 먹을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되는가?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15퍼센트 정도다. ‘엥겔의 법칙’을 들먹이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비에서 먹을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을거리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낮은 게 맞을까? 휴대전화, 전자제품, 옷차림, 자동차 등에 쓸데없는 돈을 소비하는 반면에 먹을거리에는 너무 적은 돈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전체 소비를 줄이는 대신에 꼭 필요한 곳, 예를 들자면 좋은 먹을거리를 사는 데 돈을 쓰는 것이야말로 맞는 방향이 아닐까?

실제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오히려 가계 소비에서 먹을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소득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먹는 데 좀 더 많은 돈을 쓰자’ 이렇게 마음먹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맛있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것이 당장은 돈이 더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당장 아플 때 들어가는 사회적, 개인적 비용을 생각해 보라!)

더구나 이렇게 “비싸서” 좋은 먹을거리를 외면하는 일은 설사 그것이 소득이 적은 서민을 걱정해서 나온 대응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시장 논리를 좇는 것이다. 비용 타령하면서 무상 급식 따위는 못하겠다며 버티는 이들과 방향만 다를 뿐 그 발상은 똑같지 않은가? 한마디로 말하면 돈에 상상력이 ‘포박’당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질문을 바꾸자. ‘지역 먹을거리’, ‘유기 농업 먹을거리’를 먹자고 권하는 이에게 “비싸잖아요” 하고 물을 게 아니라, 그런 먹을거리를 “(소득이 낮은 이들을 포함해) 모두가 안정적으로 먹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일단 고민을 시작하면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한 가지만 얘기해 볼까.

우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죽기로 반대하는 무상 급식을 하루빨리 도입하자. 단, 무상 급식에 지역의 농민이 땀 흘려 생산한 유기 농업 먹을거리가 쓰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누구나 지역에서 생산한 맛있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다. 어이쿠, 또 반론이 나온다. “비싸잖아요!” 그럼, 평생 그렇게 살든가!
덧붙임

강양구 님은 프레시안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