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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실의 인권이야기]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국남성들

지난 토요일 안산의 원곡동에서 모임이 있었다.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는 그곳에서 ‘이주’라는 키워드와 ‘공동체(community)’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우린 밤이 깊도록 함께 서로의 활동과 고민을 나누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거리를 나서 좀 걸어가던 중 캄보디아 레스토랑을 지날 때였다. 많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캄보디아 레스토랑을 나서고 있었다. 한국 남성들과 캄보디아 여성들로 가족을 이룬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처음으로 한국 남성들이 주도하는 공동체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실례를 무릅쓰고 회장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자신들의 모임을 ‘한국캄보디아 국제결혼가정모임’이라고 소개 하신 회장님은 모임의 취지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온라인에는 3천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있으며, 오늘 이 모임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한 거라고 했다. 온라인의 회원 수에 비해 오프라인의 참석비율은 늘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꽤 많은 가정들이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보였다.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나는 것은 ‘평등한 부부관계’라는 말과, ‘남편들이 좀 더 노력해야 하고, 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국제결혼 한 한국 남성의 책임’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가 국제결혼 한 한국남성을 ‘가정폭력’, ‘가난한 남성’, ‘부족한 남성’ 등으로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이 모임은 서로가 가진 문화 차이와 소통의 문제를 평등한 부부관계를 바탕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짧아 많은 것을 물을 수 없어서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비록 그 모임을 짧은 시간 지켜보았지만, 인상적인 대화 장면이 잊혀 지지 않는다.

“아주 좋은 남편을 만났어요!”
“전 좋은 줄 모르겠는데요. 하하하!”
“같이 사니까 모르지…….”
“잘 살 거야!”
“네~~.”

가끔 자신이 결혼 한 한국 여성이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모르는 파키스탄 출신 남편에게 우리도 선배로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신이 만난 누구는 진짜 좋은 여자’라고. 그리고는 ‘서로 잘 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부부가 살아가면서 생기게 마련인 갈등이 있을 때 서로를 견디고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 같은 지지의 말이었다. 그것이 바로 커뮤니티 즉 공동체가 주는 힘이었다. 세상의 이목이 주시 할 수밖에 없는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 비슷한 방식으로 결혼 한 사람들을 지켜주고 보듬어 주는 말들을 서로 건네는 일들이 10년이 넘는 모임을 통해서 있어왔다. 그 가운데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처럼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의지해왔다. 바로 그러한 모임이 이 한국캄보디아국제결혼가정 모임에도 있었다. 2006년 말부터 시작된 모임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지난 목요일 내 수업을 듣는 활동가 출신의 사회복지 대학원생들과 ‘다문화와 남성’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지방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상근자로 일하는 한 여성 활동가가 ‘한국남성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물론 연령차와 빈곤 그리고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주의와 한국문화우월주의가 결혼이민자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사실일 수 있지만, 그 만큼 고통 받거나 오해받는 한국남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국남성들 중에 결혼이민자여성과 결혼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한국남성들이 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했고, 누구의 친구였으며, 아는 동네 총각이었고, 누군가의 친척이었다. 그 만큼 아주 우리 삶 가까이에서 국제결혼은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고민을 나누었다. 결혼이민자여성과 살아가는 한국 남성들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 줄 것인지 말이다. 그들 또한 편견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못난 남성으로 낙인 찍혀 버린 이 왜곡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교육’이라는 말로, 또는 ‘치료’라는 말로, 아니면 ‘상담’이라는 말로 방법을 모색하겠지만, 난 지난 토요일 만난 그 ‘한국캄보디아 국제결혼가정모임’을 보고 알았다. 정말 필요한 건 서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지지이다. 정부나 민간기구(NGO)가 구성해주는 말뿐인 자조모임이 아니라 진짜 스스로 자발적으로 모여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community of on-line and off-line)’라는 것을 말이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덧붙임

정혜실 님은 파키스탄 남성과 살면서 딸과 아들을 둔 아내이자 엄마이며,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한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다문화가족협회」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