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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인권이야기] 채식가인 배우자, 그리고 떡볶이

청소년 관련해서 일을 하는 내 배우자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 덧붙이자면, 육지에서 걸어 다니는, 혹은 날아다니는 육류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몸속에 육류가 들어오면 심각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배우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으로서, 의식적인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자연스러운 채식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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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ecofem.or.kr/club/cb_list.ph...rows%3D5



내 배우자는 계란도 입에 잘 대지 않는다. ‘잘’이라고 덧붙인 것은, 계란찜 정도는 한 입 뜨곤 하기 때문이다. 우유도 마찬가지다. 입만 대도 몸에서 반응이 온다. 최근에야 시중에서 찾기 힘든, 특정 제품의 우유는 가끔 마신다.

해산물도 큰 차이는 없다. 활어 회는 입에 댈 생각도 안 하지만, 낙지나 쭈꾸미 익힌 것은 몇 젓가락 뜬다. 조개류도 한 입 정도는 먹는 것 같다. 멸치나 미더덕으로 우린 국물은 잘 먹는다. 골뱅이도 한 두 젓가락은 하는 것 같다. 이런 정황을 미뤄 짐작하면, 채식주의가 여러 갈래가 있는 듯한데, 내 배우자는 완전한 채식은 아닌 것 같다.

결혼 초기까지도 내 배우자의 식습관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특별히 채식한다는 티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식당이든 군말 없이 따라와 주곤 했다. 집에서도 고기반찬을 만들어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사실, 배우자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 때가 많았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채식가와 살면서도 채식가에 대한 배려가 삶으로 체화될 리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며 아내가 외식을 하잖다. 그래서 중심가 식당에서 만났다. 무엇을 먹을까? 항상 고민되는 순간이었지만, 왠지 그날은 삼겹살이 당겼다. 주저 없이 “삼겹살 먹자!”고 외쳤다. 그러나 그날따라 아내의 반응은 싸늘했다. “내가 고기 안 먹는 거 모르니?”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어디든 군말 없이 따라주지 않았던가? 그 날 내 배우자는 그 동안 쌓인 감정을 원 없이 쏟아냈다. 그때서야 ‘아~~ 내 와이프는 채식을 하는구나!’라는 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세상이 달라보였다. 최근에야 웰빙 바람이 불어 채식 음식점이 여럿 생기긴 했지만, 10년 전만 해도 흔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가 순수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이란 전무했으니 말이다. 채식가들에겐 고통스러운 식당문화였다는 사실! 나와 다른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깨달음! 앎과 모름의 종이 한 장을 넘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 일 후, 나는 떡볶이를 원 없이 먹고 있다. 배우자와 합의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이 우리 부부 외식의 주요 거점이고, 그 중에서도 떡볶이는 아무 논란의 여지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지난 주말 저녁도 집 근처 분식집에서 아내는 떡볶이를 시켰다.

직장 동료들과 외식하고 들어온 배우자의 옷에서 고기 그을린 냄새가 날 때면, 좀 안쓰럽다. 나조차 채식가에 대한 배려가 익숙한 것이 아닌데, 타인에게 배려를 기대하는 건 과욕이나 다름없는 일일 게다. 아내도 그런 육식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가끔 외식하고 들어온 아내가 아쉬워하며 이런 말을 한다. “오늘 1인당 3만 원짜리 회정식집에 갔는데, 정말 근사하게 나오더라. 난 손도 안대서 돈이 너무 아까운 거 있지? 그런데 우리 남편 생각나더라. 우리 남편이 왔으면 잘 먹었을 텐데.........”

상황 묘사는 안 했지만, 손 갈 때가 없어, 먹는 척만 했을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육식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매번 “난 채식한단 말이야!”라며 동료들에게 각을 세우며 윽박지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육식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채식가들이 살아가기란 정말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혼자서만 밥 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가까이 있는 남편이라도 배려해줄 수밖에. 다 좋은데, 제발 떡볶이에 인공조미료를 듬뿍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김현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