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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봐! 우리들의 독립을

[인권교육, 날다] 독립을 위한 청소년들의 고개 넘기 프로젝트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 것, 혈연이 아니라도 서로 의지가 되는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가족이라도 혈연이라도 같이 사는 것이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음은, 교과서 같은 데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진실이랄까. 어릴 적 가출은 이루지 못할 로망으로, 충동으로 이해되곤 한다. 곧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쯧쯧…’ 혀를 차며 지적되는 것이 청소년의 가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충동’과 ‘고생’으로 단정 짓기엔 몹시 불쾌한, 저마다의 배경과 사정이 있다.

날개달기

매달 한 차례씩,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권교육(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을 기획하면서 나온 여러 주제 중에 ‘가출 그리고 독립’은 인권교육의 새로운 주제였다. ‘독립이 권리야? 가출은 개인의 선택이잖아.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은? 이렇게 착취해도 괜찮은 사회야?’ 이리하여 만들어진 보드게임!

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 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집을 나서며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특히 가출과 독립을 혼자만의 문제, 온전히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온 문제의 시작을 바꿔보기로 했다. 각자 부딪치게 되는 상황을 스스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장 오늘 저녁 집을 나온다면?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까? 찜질방? 친구 집?”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가출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독립적 삶에 도달하는 ‘부루 마블 가출 버젼’의 주사위를 함께 던져보자.

더불어 날개짓 1

보드게임 판과 주사위, 이동 말 등을 준비한다. 보드 판에는 게임의 요소를 더해 ‘지갑을 잃어버려서 3칸 뒤로’나 행운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숙식 해결’을 넣도록 한다. 주사위를 1,2,3(4,5,6도 1,2,3으로 바꿈)만 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모둠이 보드 판 곳곳을 거쳐 갈 수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 마주치는 어려움 10여 개를 쪽지에 적은 다음 주머니나 상자에 넣어둔다.

가출하고 해결해야 하는 쪽지들

▲ 가출하고 해결해야 하는 쪽지들


2~3명씩 모둠을 구성해 전체 게임에 참여하는 모둠이 네 모둠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한 모둠씩 주사위를 굴려가며 말을 이동한다. ‘고개 넘기’에 말이 걸리면 주머니에서 쪽지를 한 장 뽑아 쪽지의 문제를 해결한다. 알고 있는 방법을 동원해 모둠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한 번 뽑은 쪽지는 진행에 따라 한 번 더 풀어보도록 주머니에 도로 넣을 수 있다. 두 번 정도.

부루마블 가출 버젼 : ‘꽝’ ‘장기자랑’ ‘원하는 말이랑 바꾸기’ 등과 같이 숨은 고개를 만들면 더 흥미롭다.

▲ 부루마블 가출 버젼 : ‘꽝’ ‘장기자랑’ ‘원하는 말이랑 바꾸기’ 등과 같이 숨은 고개를 만들면 더 흥미롭다.



• 밤에 잘 곳이 없어 : 친구 집 찜질방은 못 가는데…
•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 더 이상 재워주기 곤란하다고 한다.

“친구 부모님이 재워주는 거 반대하면, 공부 잘하는 친구라고 하면 좀 더 잘 수 있어. 전에 친구 가출했을 때, 내 친구가 공부 좀 했는데 아주 잘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자도 좋다고 했거든.”
“한 달만 봐 달라고 사정해보자. 설마 잘 데도 없다는데 내쫓을까?”
“고시텔은 어때? 알바해서….”
“고시텔에 가려면 하루 종일 알바 해야 돼. 학교는 어떡하구.”“단체를 활용하는 거야. 인권단체한테 재워달라고. 하하”

•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비용이 없어 ㅠ.ㅠ
“데이트는 돈 안 드는 데 찾아보는 거야. 도서관 같은 곳.”
“먹는 건 어떻게 해?”
“아! 촛불집회 가면 먹는 것도 주잖아. 볼 것도 있고, 걷기도 하고, 시간도 잘 가. 짱이다.”
“먹는 거는 대형 마트 시식코너!”
“근데 차비는 들잖아. 적어도 2천 원은 들어.”
“그럼, 집에서부터 행진하라고 해. 하하.”

• 이가 아픈데 치과 갈 돈도 없고, 보험증 없어서 괜찮나?
“아픈 건 참을 수밖에 없어.”
“후원을 모으는 거야. 자유발언 같은 데서 가출했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후원해달라고 하면 어때?”
“보건소가면 돈 들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자. 의사 아는 사람 없어?”
“야, 우리가 의사를 아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나이에 의사를 알기가 쉽냐?”
“아프면 불쌍하다.”

•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는데 부모동의서가 필요하네.
•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착취 + 인권침해

“아르바이트, 동의서 없으면 안 돼?”
“난 전에 알바 할 때, 동의서뿐만 아니라 노동부 장관 허가서도 있어야 했어. 만 15세 미만이래서.”
“위조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동의서 위조해서 내도 어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해.”
“그러면 어떻게 해?”
“가짜 어른 섭외하면 되잖아.”
“근데 그거 불법이지?”

• 학교에 갔는데 교사가 가출한 걸 알고 집으로 보내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왔다.
• 등교문제, 교복과 책, 준비물, 급식비, 등록금

“가출한 거 학교에 얘기하면 안 되겠지?”
“당근이지. 집에 끌려가. 그리고 가출은 교칙 위반이야.”
“학교에서 거짓말 해야겠네”
“다니면서는 계속 거짓말 하겠지. 급식비 못내도 거짓말, 준비물 못 가져가도 거짓말, 근데 학교 다니기 쉽지 않겠다. 잘 데도 없는데 학교 다닐 생각할까?”

• 가출했는데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흑
“잘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옷도 꼬질꼬질 하면…” “최악이다”
“집에서 엄마 통장이라도 들고 나와야 하는 거야? 참.”
“왠지 계속 불법으로 간다, 우리.”
“그러게 점점…. 정당한 방법은 없나?”
“야, 우울해진다.”

신나게 시작한 가출 여행이 점점 심각해진다. 웃으면서도 우울함이 배어 나오는 청소년의 가출 일기에 빨리 게임을 끝내도, 마냥 환호성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가출해서, 독립해서 당당히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우리 현실에 착잡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출, 할 게 못되는구나’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출의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보다 가출의 정당성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이 집을 나와서 정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거야?!!”

더불어 날개짓 2

독립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 ‘사회’와 ‘나’로 나눠서 생각해봐요~

▲ 독립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 ‘사회’와 ‘나’로 나눠서 생각해봐요~


독립을 희망하는 청소년이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사회는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각 모둠별로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도록 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 으뜸인 것은 다른 모둠이 퀴즈로 맞춰보도록 색지로 가리고, 발표를 한다.

사회에서 준비·제공해야 할 것들
· 노동할 수 있는 조건 /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
· 주거 공간 : (정부의) 직접적인 제공 / 안정적인 주거 공간(무상)
· 청소년을 위한 의료보험 (청소년은 의료비 공짜?) / 학교, 사업장 등 건강검진+치료
· 교육… (쩜쩜쩜; 왠지 그냥 지금의 교육은 아닌 것 같아) / 교육개혁, 무상교육, 입시폐지
· 교통비+공과금 무상 또는 할인?

이외에 청소년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들로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뻔뻔함’ ‘시간관리’ ‘인간관계’ ‘깡’ ‘요리실력’ 등을 뽑았다. 또 청소년의 알바 저임금으로는 잠자리는커녕 세끼 식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 가출한 청소년도 학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현장학습 가면 입장료 내야 한다는 사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급식비 못 내면 식판 안 준다는 거, 청소년이라고 절대 공과금 같은 것은 깎아주지 않는다는 거 등등 8개월째 가출 중, 독립을 꿈꾸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적나라한 현실을 들춰낸다.

끄덕끄덕 맞장구

서로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집을 나와 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또는 혈연이 아닌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이다. 가출이든 독립이든 청소년은 ‘이렇게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독립적 삶이 가능한 사회는 꿈꿔 본 적이 없다. ‘안타까움’은 그저 안타깝게,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안은 채 지낸다. 그러나 그들은 꿈꾼다. 저들의 안타까움과 불안을 딛고 자신의 독립을!

덧붙임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