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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의 인권이야기] ‘커밍아웃’을 아시나요?

넘쳐나는 커밍아웃 속에 느끼는 비감


‘커밍아웃’을 일단 글자 그대로 풀어보자. ‘커밍아웃[coming out]’은 ‘벽장 밖으로 나오다. [to com out of the closet]’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으로 개인이 처음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이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는 과정을 말한다.(커밍아웃 가이드북,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발행, 2007년) 말 그대로 하면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애자가 ‘커밍아웃’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니 이 말은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한다.

넘쳐나는 커밍아웃 속에 느끼는 비감

그렇지만 한국사회에는 참 많은 ‘커밍아웃’이 있다. 인터넷 뉴스 검색란에‘커밍아웃’을 검색해 보자. ‘허허’하고 웃음이 날 정도로 재밌기도 하고, ‘이건 모야’하는 감정과 함께 슬퍼지기도 하는 커밍아웃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헤 전대표가 미디어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하자, 민주당에서는 커밍아웃했다고 했고, 한 남성이 전업주부를 선언하자 그도 커밍아웃했다고 했다. 이제‘커밍아웃’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단어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커밍아웃’이 한국사람 모두가 아는 단어가 되는 데는 아마도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추후 언론에서 혹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는 누군가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예축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 때,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그러다 지금처럼 사용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하지만 단어 원래 뜻 그대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은 여전히 귀하다. 가뭄에 콩 나는 정도만 해도 좋으려만,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은 여전히 매우 드물고, 정말 어렵다. 물론,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경우는 점점 늘고 있다. 친구 혹은 동료에게, 또는 가족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과감히 밝히기도 한다. 때론 직접적인 말을 안 해도 ‘이쯤되면 알겠지?’하는 눈짓과 몸짓 그리고 행동을 해도 말로 하기 전에는 전혀 눈치 못 채는 요지부동 이성애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상에서 자신을 알리는 성소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다.

20대의 게이 연애담을 다룬 영화 <친구사이>의 제작후원을 홍보하는 사진( 사진 출처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홈페이지<br />
http://chingusai.net/)

▲ 20대의 게이 연애담을 다룬 영화 <친구사이>의 제작후원을 홍보하는 사진( 사진 출처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홈페이지
http://chingusai.net/)


커밍아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야~

그런데 ‘커밍아웃’이 마치 성소수자 개인의 취향정도로만 인식되기도 한다. 그것이 마치 쇼핑에서 물건 고르듯 자기의 성정체성을 순식간에 선택한 줄 안다. 물론‘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생각만큼 그리 녹록치 않다. 작게는 자신의 작은 일상적인 변화부터 크게는 생명의 위험까지도 고려하여 신중하게 하는 것이 ‘커밍아웃’이다. 어떤 이는 날씨마저도 고민한다. 물론 매우 운 좋게도 정말 부러운 ‘커밍아웃’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성소수자들의 깊은 고뇌와 번민 속에서 ‘커밍아웃’을 고려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그것을 매우 즐겁게 포장하는 기술도 있다.)

그런데 어렵사리 한 ‘커밍아웃’을 ‘그래 그건 너의 선택일 뿐....’이라며 단숨에 일축시키고, 그저 아무 일 없는 듯 넘어가는 이들도 있다. 물론 전과 동일하게 이성애자처럼 대하는 이들도 있다.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서 꼭 무언가 변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했다면 그것은 당신을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그저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한 ‘커밍아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행여 당신을 좋아한다고 무작정 오해하지는 마시라. 때론 당신을 좋아해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그렇지 않다. 좋아해서 고백했다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꺼져’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매우 어렵게 한 커밍아웃을 그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여기면 성소수자들은 두 번 상처받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 하는 것이 ‘커밍아웃’이라고도 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더 많은 ‘커밍아웃’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덧붙임

박기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