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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이 기쁜 싸움

[편집자 주] 이 편지는 8월 4일 오후 6시, 이길준 이경이 구금되어 있는 중랑경찰서 앞에서 있은 전의경 예비역들의 기자회견에서 필자가 낭독한 편지다. 이 편지는 이길준 이경에게 전달되었다.

즐거운 저항을 하고 있는 길준 씨에게 연대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모임의 예비역 전경 최재완이라고 합니다. 길준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사실 석 달 가까이 계속 되고 있는 촛불집회에서 그러한 고민을 갖고 있는 전의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을 행동으로 옮긴 것에 적지 않게 놀랐고, 또 그러지 못했던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길준 씨는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다.’라는 말을 했더군요. 저는 길준 씨의 그 말을 들으며 2003년 부안에서의 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부안의 상황은 지금 서울의 상황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습니다. 핵 폐기장의 건설로 지역 주민들의 삶은 위협 당했고 그들의 정당한 의사표시에 국가권력은 군화발로 응수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군화발의 일원으로 그 곳에 있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저는 무장을 하고 제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이들, 동네 어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고, 방패의 날을 세우고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공격을 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저도 사람인지라 시위가 격해지고 제 동기들과 후임들이 시위대와 충돌을 빚을 때면 저도 모르게 시위대를 향해 욕을 하기도 했고 방패로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폭풍처럼 진압이 끝나고 나면 길준 씨가 말했듯,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에 매번 무척이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경험은 소박하나마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저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폭력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로
우리는 스무 살 남짓한 가장 젊은 시기에 권력의 폭압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스스로 되풀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시에 꿈꾸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침묵하는 법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단지 잘 살기 위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시민과 노동자들, 친구와도 같은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성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며 당연한 듯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내고 있을 젊은 친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폭력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길준 씨의 저항을 지지합니다. 또한 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청년들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폭력을 내면화시키며 결국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전의경 제도 또한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횡포에 개인이 파괴되어도 그것을 상처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이들, 알면서도 외면하고, 도피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든 고민 끝에 그저 껍데기만 남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준 길준 씨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용기가 옳은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권력이 선사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에 당연하다는 듯 침묵하며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길준 씨의 저항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삶의 주인이 되어 가는 이 싸움이 저는 참 좋고 기쁩니다. 앞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시련 앞에서도 힘을 내십시오. 당연한 것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이니 기쁘고, 함께하는 목소리가 있으니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길준 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전의경들이 이 저항에 동참하길 기대합니다.

덧붙임

* 최재완 님은 '이길준 이경의 양심선언을 지지하는 전의경출신 예비역모임'의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