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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하지 않는 ‘기다림’, 활동보조인과 직접 만나 얻은 씨앗

[인권교육, 날다] 활동보조인과 이용 장애인의 환상적인 콤비를 위해

2005년 12월, 중중 근육장애인 조모 씨는 보일러가 터져 방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물을 피할 길이 없어 얼어 죽어야 했다. 그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가끔’ 찾아와 주는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왜 혼자 살게 내버려 두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립 생활을 선택한 중증 장애인에게 이것은 정확한 질문이 아니다. 이들에게 오히려 필요한 질문은 ‘왜 중증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이런 질문을 사회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고, 무기한 단식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의 성과로 지난해 ‘활동보조서비스’의 제도화를 이끌어냈다.

날개 달기 -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이 만나다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되면서 활동보조인은 60시간의 사전 교육을 받게 되어있다. 자칫하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오히려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 교육은 필수! 현재는 장애유형별 특성이나 보장구의 이해, 자립생활의 의미, 그리고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해야 할 구체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배웠던 이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인권교육에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문명동 씨, 임은영 씨와 함께 활동보조인이 겪게 될 구체적인 상황들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을 기획했다. 또한 교육에도 직접 참여해 활동보조인들에게 더욱더 생생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날갯짓 1 - 낯섬과 마주하기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길 따라 삼천리’

▲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길 따라 삼천리’


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이런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느껴 볼 수 있도록 둘씩 짝을 지어 ‘길 따라 삼천리’를 해봤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옆 사람이 말로 길을 안내해서 종이 위에 그려진 원의 바깥에서 안쪽까지 연필로 선을 그어 도착하면 된다. 번갈아 가며 길을 찾아 나선 후 자신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는지, 길을 찾아가는 데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봤다. “안 보이는데 동그랗게 가라고만 해서 어려웠을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오른쪽, 왼쪽이 다른데 내가 틀리게 설명을 해줘서 반대로 갔다” 등 설명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사소통이 어려웠다며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보조인이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소통을 해야 할까.

활동보조인이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펼쳐놓고, 실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상황극을 통해 소통의 방식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활동보조인 :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앞으로 도와드리려고 왔는데 필요하신 일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은영 : 샤워 좀...
활동보조인 : 샤워요?
(샤워를 하고 난 후)
활동보조인 : 또 뭐 도와 드릴까요?
은영 : &^*…
활동보조인 : 화장실?
은영 : 아니요.
활동보조인 : 예? 오줌?
은영 : 아니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은영 씨의 말에 익숙하지 않은 꿈틀이는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고 미안했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애인마다 몸의 특성이나 말하는 방식이 달라 활동보조인이 낯설어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똑같은 상황을 다른 꿈틀이를 통해 재현해 보았다. 그런 후 뭐가 중요한 지 물으니 단박에 답이 나온다. “답답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더불어 날갯짓 2 - 느림에 익숙해지기

어떤 순간에도 활동보조인에 의해 장애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영 씨가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미끄러져 바닥에 엎어져 있다.)
활동보조인 : (깜짝 놀라며)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은영 : 일으켜주세요.
활동보조인 : 그럼 머리를 이렇게 넣고 올려드릴까요?
은영 : 예.
활동보조인 : 그 다음에 어떻게 해 드릴까요? 휠체어에 태워드려요?
은영 : 예.
(혼자서 하기 힘든 활동보조인이 급하게 화장실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한다.)
활동보조인 : 아저씨! 도와주세요.

혼자서 은영 씨를 휠체어에 앉히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 혼자서 은영 씨를 휠체어에 앉히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도움을 주러 나온 남성 꿈틀이도 어려워하기는 마찬가지. “급해서 나왔는데, 나와서 보니까 여자잖아요. 다음 동작이 생각이 잘 안 나더라고요. 여자 장애인이라서 존중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남자라 하기가 어려웠어요.” 은영 씨의 경험을 토대로 구성한 사례였는데, 실제 상황에서도 남자들이 들어와서 은영 씨를 덥석 들어 휠체어에 태웠다. 그때 은영 씨는 “정말 황당했고 창피했다”고 한다.

“위급한 상황인데 인권을 챙기다보면 언제 일을 처리할 수 있겠어요?” “근력이 필요한 일이라서 남자를 불러온 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꿈틀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런 판단 또한 은영 씨를 뺀 활동보조인을 기준으로 한 생각이라는 게 은영 씨와 명동 씨의 생각이었다. “그때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냥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뿐이에요. 어떤 상황인지 (저한테 먼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 상황을 제일 잘 판단하는 것 또한 장애인 당사자라는 것. 명동 씨가 말을 이었다. “활동보조인이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의사를 물어보고, 여자를 모셔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속도, 경쟁에 있어서 뭐든지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죠. 그런데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 사회의 속도에 못 따라가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꿈틀이들의 물음표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맞대어 - 관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교육을 마치고 자신에게 싹튼 씨앗을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동정이 아닌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 먼저가 아니고 장애인 입장(생각)에서’, ‘기다림’, ‘공존’ 등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이 숙지해야할 원칙들이 꿈틀이들의 평가를 통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대리’가 아닌 ‘기다림’과 ‘공존’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길.

▲ ‘대리’가 아닌 ‘기다림’과 ‘공존’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길.


돋움이가 지레짐작으로 상황을 꾸미고, 억지로 끼워 맞춰 교육을 진행하다보면 낭패를 보기 쉽다. 이번 교육에서는 교육 기획부터 진행까지 장애인 당사자인 명동 씨와 은영 씨가 참여해 교육 내용이 더 풍성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당사자들의 참여와 현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꿈틀이들이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도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리라.

덧붙임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