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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파업의 본질

파업권 인정 않는 이랜드의 가처분 신청에 부쳐

서울 상암 홈에버 매장에서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한창이던 7월 2일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조합원 10여명을 상대로 영업방해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6월 25일 이랜드 계열사인 뉴코아는 뉴코아노동조합 조합원 33명을 상대로 영업방해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상암, 일산을 포함해 전국 32개 홈에버 매장을 대상으로 직무급제와 부당해고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팅을 하거나 행진하는 경우 △집회를 하거나 연좌하는 행위 △계산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유인물을 바닥에 뿌리거나 배포·게시하는 행위 △현수막을 설치하는 행위 등을 금지행위로 지정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뉴코아 역시 뉴코아 본점을 비롯해 전국 17개 매장을 대상으로 매장 계산직 업무의 아웃소싱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등 위와 동일한 ‘금지행위’에 대해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이다.

법원이 회사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이랜드 노동자들은 전국의 홈에버와 뉴코아 매장에서 부당해고와 외주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거나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현수막을 걸 수 없다.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를 어길 경우에는 막대한 금전적인 손해가 따른다. 2006년 9월 철도노조의 경우,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철도공사의 ‘퇴거 및 업무방해 가처분’을 받아들인 결과 철도노동자들은 역사 안에서 부당해고를 알리는 스티커를 부치거나 구호를 외칠 수도, 피켓을 들 수도 없었다. 또 2005년 3월 수원지방법원은 신세계가 경기지역일반노조원을 상대로 낸 ‘영업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이들이 이마트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각각의 행위에 대해 매번 5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가처분은 손배·가압류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통제수단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의사·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빼앗는 가처분은 한마디로 노동자의 손과 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 애초 ‘가처분’은 급박한 사유에 의한 큰 손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조치이지만, 그동안 법원은 일방적으로 사용주의 편을 들어왔고 이에 편승해 사용자들은 ‘급박한 사유’라는 명목으로 평시에도 가처분을 악용해왔다.

헌법으로까지 파업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이유는 파업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주요한 수단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일방적으로 쥐고 있는 사용자는 노동자와 결코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약자로서의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수단이 되었던 것은 바로 유일하게 사용자의 재산상의 손해를 전제로 한 파업이었다. 사용자는 자신의 재산상의 손해 앞에서 비로소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파업은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재산상의 손해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헌법적 가치로서의 노동자 파업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법원은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