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비무장지대에서 수색로를 내던 장병 3명이 지뢰 폭발로 다쳤다. 10월 5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이남에 매설한 지뢰라고 최종 발표했고, 유엔사는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했다. 대다수 언론은 북의 도발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이 일을 “불의의 사고”라 불렀고,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위치를 함께 확인하자며 지난해 11월에 이어 군사회담을 다시 제안했다. 조선은 이 제안에 묵묵부답인 채, 김여정 조선노동당 총무부장은 “국경 요새화는 주권 행사”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평화공존 3원칙을 내건 이재명 정부지만 남북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조선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과 8년 전, 문재인 정부시기에는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군사적 긴장을 낮추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관계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악화됐을까.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조선의 적대는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나
2024년 1월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며 두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조선 땅을 자국 영토로 명시한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 그리고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을 꿈꾸는 한국의 태도다. 한국과 조선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국제적으로 두 주권국가가 됐지만, 한국의 헌법 3조는 지금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1948년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이 조항은 다른 유엔 회원국의 영토를 자국 영토로 적은 유일한 헌법 조항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데, 조선은 이 법에 따라 반국가단체로 다뤄져 왔다. 행정안전부는 지금도 북쪽 다섯 개 도에 차관급 도지사를 임명하며 조선 땅을 한국의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다. 한국 정부가 화해와 평화공존을 말하든 아니든 한국과 조선의 관계의 바탕은 늘 적대였다.
국방도 마찬가지다. 조선이 무너지면 한국의 공무원을 보내 행정을 접수한다는 ‘충무계획’과 유사시 조선을 군사적으로 점령해 통일을 이룬다는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모두 조선이 무너지는 상황을 전제로 계획됐다. 한국사회에서는 당연한 국방이 조선에게는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준비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조선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정의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가 아닌 한국을 조선과 적대하는 별개의 국가로 대하겠다고 한다. 통일 지향을 삭제하며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건 조선이지만, 그동안 조선을 분명한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적대’에 근거를 대 온 건 한국이었다. 한국이 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떠한 평화 제안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적다. 한국이 조선을 대하는 태도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대는 커지고 평화는 멀어졌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30여 년, 한국은 평화를 말했지만 적대는 커지고 평화는 멀어졌다. 그 중심에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짜 온 비핵화 전략이 있다. 1991년 비핵화 공동선언 직전까지 주한미군은 조선을 겨냥한 전술핵 수백 개를 두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철수하며 비핵화 선언을 주선했지만 한미연합훈련, 미국의 핵우산은 그대로 남았다. 한국은 조선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며 제재에 함께했을 뿐, 먼저 제재를 풀겠다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 핵협상 중이던 2008년에는 한미연합사가 대비하는 ‘우발 상황’에 조선의 급변사태가 포함되었고, 2015년에는 핵 사용 징후가 보이면 선제타격하고 급변사태일 시 연합군을 투입한다는 작전계획 5015가 나왔다. 조선에게 비핵화는 요구하면서 체제 안전은 보장하지 않는 협상에서, 핵은 조선이 포기할 수 없는 생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평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 같던 2018년에도, 조선에게는 무장 해제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군사력을 늘리는 구조는 깨지지 않았다. 한국과 조선의 정상은 판문점과 평양에서 단계적 군축에 합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 중단을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 넉 달 뒤 정부는 이듬해 국방예산을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인 8.2% 늘려 편성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으려면 연합훈련으로 한국군의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조건도 그대로 유지했고, 이는 대규모 군비증강으로 연결되었다. 군축을 약속하면서 군비는 늘린 셈이다. 조선이 거듭 강조했던 연합훈련 축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2월 하노이 조미 회담이 결렬되고 그해 8월 연합훈련이 이어지자, 조선은 한국 측과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등을 돌렸다. 이후 핵무력을 강화하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통일 지향마저 헌법에서 지웠다.
결국 남은 건 한쪽이 무장하면 다른 쪽도 무장하는 악순환이다. 평화공존을 내건 이재명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2027년 국방예산안을 2008년 이후 최대폭인 8.2% 늘려 처음으로 70조 원을 넘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맹과 자주국방은 필요충분조건”이라며 전작권 환수와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함께 지시했다. 조선이 핵무장을 강화하자 국민의힘은 한국도 핵무장을 논의하자고 나섰다. 이러한 악순환이 가장 먼저 터진 곳이 한국과 조선이 맞닿은 군사분계선이다. 올 8~9월에만 조선군이 약 50차례 군사분계선을 넘었는데, 조선은 8월부터 10월 중순까지 한국 측의 경고방송 2,870회와 경고사격 201회가 긴장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1953년 정전 직후 세운 표지판 1,292개 가운데 지금 확인되는 건 180여 개뿐이다. 한국과 조선의 군인들이 저마다 자기가 아는 선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이곳에서의 대치는 언제든 교전으로 번질 수 있고, 9월 21일의 지뢰 사고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강화된 적대의 구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조선이 통일이라는 전제 자체를 지운 지금, 한국도 과거의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는 남·북·미·중 4자 대화를 제안했다.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한 3단계 로드맵도 함께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19일 김여정은 이재명 정부의 적대적 태도가 윤석열 정부를 넘어섰다며 대남 확성기 재개와 전술타격수단 전진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단순히 제안을 하나 더 내놓는다고 풀릴 적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의 현실부터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조선은 이미 두 국가다. 국제적으로는 1991년부터 그랬고,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열에 여덟이 조선을 별개 국가로 여긴다(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26년). 이제 질문은 두 국가가 서로를 위협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그건 하나의 정치체가 자기 체제를 온전히 보장받으려는 시도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대에게 무장 해제부터 요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협하는 관계부터 바꾸는 일이다. 비핵화 역시 상대의 핵무기를 먼저 제거하는 과제로만 두지 않고, 상호 안전을 보장하며 군비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다뤄야 한다. 핵군축을 평화의 선결조건으로 두는 대신, 적대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만드는 과정으로써 함께 풀어가야 한다. 그 과정은 조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온 한미연합훈련을 줄이고 군사적 신뢰를 쌓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조선을 조선이라 부르는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침략당하지도 침략하지도 않을 권리
현재의 군사분계선에서는 언제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정확한 선은 합의되지 않았고, 양쪽 군은 그 위에서 맞서고 있으며, 확성기는 언제라도 다시 켜질 수 있다. 이런 때 우리가 먼저 움직이자는 말은 쉽지 않다. 조선이 협상을 원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조선이 앞장서 긴장을 높이고 있고,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핵무력의 길을 택한 것도 조선 자신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적대에 적대로 맞장구칠 순 없다. 대남 확성기에 대북 확성기로 맞서자는 말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가 도입하려는 핵추진잠수함은 한국의 안보를 넘어 한미동맹의 구조와 중국의 안보 인식, 대만해협 정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무장이 한반도 바깥의 긴장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변화는 조선이 응답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가 스스로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역대 최고 수준의 군비확충에 돌입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무기로 지키겠다는 평화가 쌓아올린 지난 30여 년의 결과가 ‘일촉즉발의 적대구조’이다.
침략당하지 않을 권리이면서 침략하지 않을 권리로 ‘평화적 생존권’을 다시금 떠올린다. 한국과 조선의 평화는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파이싸움이 아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적대가 아닌 공존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군사분계선 위에서 쓰러진 장병들, 접경지역에 사는 이들, 그리고 위태로운 선 건너편에서 다르지 않은 군사적 긴장을 견디는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한 장벽이 아니라 서로를 위협하지 않는 관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