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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설득당하기 연습

‘적극적으로 설득당해 보자.’ 요즘 저 혼자 마음속으로 많이 되뇌곤 하는 말입니다. 설득이라는 말이 사전적인 의미에 따르면 상대가 깨우쳐서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데, 깨우치는 것이 어디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던가요. 그럼에도 상대의 이야기에 깨우침을 얻어보겠다고 ‘설득당하기’라는 의지를 키우는 앞뒤가 안 맞는 다짐을 반복하는 중인데요. 이런 저의 상태를 밝히는 것은 사실은 부끄러운 자기 고백에 가깝습니다. 제가 요즘 좀처럼 타인의 이야기에 귀가 열리지 않고 깨우침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가가 하는 일은 사실 설득당하기보다는 보통 설득하는 일의 무수한 반복입니다. 시민들을 설득하고, 정치인을 설득하고, 동료들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만들고 사회가 바뀌도록 설득의 언어를 만드는 일이 곧 활동가의 일이니까요. 활동가로서 경험이 쌓이는 과정은 설득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더 효과적인 설득 방식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매번 같은 사람, 조건, 상황이 아닌데도 제가 익숙한 방식이나 경험을 갖고 상대를 설득하려 드는 것이죠. 그래서 나름 노력하며 잘해왔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스스로 돌아보면 제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합니다. 저는 상대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제압하려 들었거나,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는데 제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공회전하는 대화만 이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죠.

 

초기에 설득이 실패할 때면 설득해야 하는 대상들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설득당하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다음은 더 잘 설득해 보자는 결론이 이어지더군요. 앞뒤 맥락을 더 풍성하게 설명하고, 의도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서요. 그런데 이걸 아무리 열심히 해봐도 시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동료를 설득하는데도 쉽지 않더라고요. 설득하는 일이 직업인 활동가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해서야 앞으로 어떻게 활동가로서 과제들을 헤쳐 나갈 것인지 고민은 깊어지는데 해답은 보이지 않고 점점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답답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하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설득만 하려고 해서는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는데요. 잘 설득한다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더 옳은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는 대상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의 입장을 마치 제 입장인 것처럼 저의 언어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저는 마음을 닫고 상대만 열어보겠다고 애를 쓰니 나의 설득은 실패해온 것 아닐까 하는 힌트를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힌트가 정답이 아닌 이유겠지요. 말로는 열심히 설득당해 보겠다고 하지만 낯선 대상의 언어, 논리, 행동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저로선 단번에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엔 대상을 탓했다면, 이제는 상대의 입장을 읽어내지 못하는 작은 그릇의 소유자인 저 스스로를 탓하게 된달까요. 설득하지도, 설득당하지도 않는 진퇴양난의 상태인 스스로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소진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설득당하기의 연습을 이어 가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옴짝달싹이 안 된다면 이왕이면 남 탓보다는 내 그릇 넓히려고 애쓰는 일이 저에게 남는 일 아닐까 하고요. 작은 그릇이 커지면 얼마나 커지겠습니까마는 애쓰는 자신을 바라보며 ‘너무 넓은 그릇의 소유자가 되려는 것 아냐?’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