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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① '춤추는 허리' 공연

장애여성들에게 연극이란


[편집자주] 인권운동이 새로운 양식과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판에 박힌 기자회견, 집회, 법률투쟁 등에 갇혀 온 인권운동의 현재를 반성하고, 소수 활동가나 전문가들만이 참여하는 방식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7회에 걸쳐 최근 새롭게 실험되고 있는 운동들을 소개해, 이들의 경험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인권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한다.

장애여성공감 연극 팀 <춤추는 허리>는 지난 2003년 장애여성과 폭력을 주제로 처음으로 장애여성의 문제를 다룬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2004년 장애여성의 생애사를 다룬 연극을 공연했고, 올해도 새로운 주제에 맞는 장애여성 연극을 올릴 계획이다.

지금까지 장애여성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연극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지금껏 닫혀 있었던 장애여성들의 목소리와 문제를 장애여성 당사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연극팀을 기획하게 됐다. 팀장 겸 배우로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배우들이 단순히 연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들에게 연극에 대한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연극에 대한 열정 속에 자신들이 장애여성으로서 겪으며 살아온 삶들을 처절히 표현해 낸다.

연극은 워크샵을 통해 서로의 살아온 삶을 얘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고 연습하게 된다. 지난해에는 장애여성의 생애사를 연극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 처녀 시절, 그리고 중년기까지의 과정들을 차례차례 워크샵을 통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워크샵 과정을 다 마친 후에는 연출자들이 이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상황극 등을 재연시키면서 본격적인 연극연습에 돌입했다. 상황극 등에서 나온 대사들을 바탕으로 연출자들이 대본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정기공연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여성들은 연극을 한다는 열정 못지 않게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놓으면서,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며, 심적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일반 대중들이 장애여성들이 안고 살아가는 문제를 인식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좀 더 다가가기 쉽고 색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연극'을 선택하게 됐다. 한 편의 연극을 통해 장애여성들의 문제를 제시했을 때, 그 효과는 다른 어떤 방법들보다 정말 쉽고 편안하게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을 공연을 통해 실감한다.

어떤 이들은 장애인 문제는 다 마찬가진데, 장애여성의 문제를 따로 분리시킬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장애여성 문제는 장애남성들의 문제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기에 가정과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 불이익은 장애남성에 비해 배가 되는 부분이 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장애여성의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와 사회적으로 남성에 비해 열악한 여성의 문제를 동시에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춤추는 허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것들을 계속적으로 알려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편 연극을 본 사람들은 <춤추는 허리>의 연극이 다른 장애인 연극과 다르다는 말들을 한다. 그 말 속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다른 장애인 연극, 내지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들은 결말이 모두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에 우리의 연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들의 지적처럼 우리의 연극은 그것이 다르다. 문제를 던지는 연극, 관객들에게 극이 제시하는 문제를 자꾸 생각나게 하는 연극, 그것이 바로 다른 연극이나 장애인을 소재로 한 여타의 작품들과 다른 것임을 말하고 싶다. 사실 장애인의 삶이 어찌 해피엔딩일 수 있겠는가? 이제는 그 해피엔딩 뒤에 가려진 진실의 베일을 벗겨야 하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우리의 연극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이 벌써 어떤 형식으로든 그 의미를 생각하고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춤추는 허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속에 장애여성의 문제가 깊이 각인되고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그 날까지 <춤추는 허리>의 공연은 계속 될 것이다. 장애여성에게 연극이란 온 몸을 다해 표현하는 삶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박주희]

◎ 박주희 님은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 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