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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전향몰이' 악령의 귀환을 막아라

"너는 누구였느냐. 그리고 지금의 너는 누구냐"

'전향몰이'라는 어두운 시대의 악령이 또 다시 온 나라를 헤집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흐름을 되돌려보겠다는 심산으로 한나라당이 첫 번째 독침을 내뱉는다.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여론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제 두 번째 독침을 날린다. 국민이 알고자 하는 것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니 전향 여부를 확실히 하라고. 아니나 다를까. 수구언론도 갖가지 요설을 늘어놓으며 전향 고백을 강요한다. 한총련 수배 해제 문제, 송두율 사건에서도 보아왔던 익숙한 풍경들의 재생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오해한 어른이 무섭게 잘못의 시인을 요구할 때, 아이도 끝까지 침묵함으로써 진실과 양심을 지킨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시대, 색깔몰이와 전향강요 공세는 침묵을 지키는 최소한의 일마저도 불가하게 만든다. '과거에 편향되고 잘못된 길을 가기도 했다'는 이 의원의 고백은 그것이 진심의 표현이든 그렇지 않든, 한 인간을 폭력과 공포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이 낳은 잔혹상이다.

그들은 말한다. '떳떳하면 왜 내심을 못 밝히나. 우리와 같이 살려면 네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전향을 했다면 품을 것이요 전향을 하지 않았다면 단죄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권력의 폭압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내심은 밀봉된다. 권력이 요구하는 방향대로 개인의 사상을 꿰어 맞추고 굴복하는 일을 국민됨의 의례로 치장하는 기만이 제도화된다. 어떤 사상을 따랐으면 어떻고 지금도 따른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질식시킨다. 진실과 인권의 말살. 이것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이 지난 56년간 우리 사회에 '암약'하며 저질러온 폭거의 정확한 결과다.

다행히 이번 색깔 파문은 해묵은 색깔론에 대한 염증과 고문·용공조작 주장으로 역풍을 맞으며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파문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의 시대를 넘어서는 일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 하나를 폐기하는 일로 그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실과 사상·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언제든 귀환할 '전향몰이'라는 악령에 영원한 안녕을 고해야 하는, 더 지독한 수고로움이 우리에게 남아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