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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병원의 돈벌이에 환자들의 권리는 뒷전

'격리환자' 병원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 병실료 최대 30배까지 내야

지난 1일부터 변경되어 적용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격리실 입원료 인정기준이 병원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를 방조하고 있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1998년 서울 A 병원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 받아 15회 이상 입원치료를 받은 김아무개 씨는 2000년 3월부터 그 해 말까지 다섯 번 격리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격리병실이 없어서 상급병실(6인실 이하)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던 김 씨는 16일의 입원기간 동안 무려 150여 만원의 부당한 입원료를 내야 했다. 격리병실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부담액이 약 1만2천 원인데 반해 상급 병실은 최고 30만원에 이르는 고액을 환자가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 씨는 변경 전 격리환자 심사 기준에 따라 2년만에 과다징수금액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심평원이 격리실 입원료 인정기준을 '병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경해 김 씨와 같은 피해 사례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형병원들은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건강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상급병실을 내주면서 불합리한 폭리를 취해왔다. 지난해 7월부터 1년여 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의료기관 조사 결과, 일반병실(6인실)을 50% 이상 갖추지 못하면 5인실 이하 상급병실이라 할지라도 건강보험 급여 가격을 적용해야 하는데도, 일반 병실을 50%이상 확보하지 못한 대부분의 병원들이 환자들에게 상급병실료를 그대로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입원 환자 중 전염성이 강한 환자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격리실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 격리병실에 대한 설치 의무규정이 없어 환자들이 고액의 입원료를 지불해왔다. 격리병실 입원 역시 건강보험의 급여대상이지만, 대부분의 병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환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격리병실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환자들을 상급병실에 수용, 비급여 대상인 상급병실 이용료를 받아 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심평원의 이번 결정은 병원들에게 건강보험의 적용을 피해 돈벌이할 수 있는 길을 더욱 보장해 주고 있다. 기존 심평원 기준은 면역력 저하 등 4가지 경우에 격리실 입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격리 기간도 병세가 '회복'될 때까지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변경된 기준은 격리실 입원의 경우가 3가지로 축소되고 '반드시' 격리실에 입원해야 한다는 규정은 사라졌다. 특히 문제는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격리실 입원 여부는 '담당의사의 판단에 의한다'고 덧붙이고 있는 점이다. 의료기관이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격리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심평원의 이번 조치는 격리실 인정기준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5일 "넋나간 심평원의 격리실 심사기준 변경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 이번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변경된 격리실 입원료 인정기준은 지극히 의료기관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환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 앞으로의 항의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국민적인 기준"이라며 "(변경된)격리병실 입원료 인정기준을 백지화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전면 재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