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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자유로운 호흡을 갈망하며…

목포결핵병원 환자들의 투쟁 1년


지난해 2월 18일 정부는 국립목포결핵병원을 민간에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국립목포결핵병원 환자들은 “민간위탁 철회”를 주장하는 투쟁으로 맞섰고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환자의 몸으로 투쟁을 시작한 지 1년, 목포결핵병원의 환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가 만나봤다.


정부의 사형선고

결핵 때문에 팔 남매 중 세 명을 잃고 자신도 13년째 결핵을 앓고 있다는 최바울(45세) 씨.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거든요. 하지만 병원이 민영화된다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더 이상의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두려워요. 삶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네 살 난 아들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정부가 국립목포결핵병원의 민간위탁 결정을 발표한 지난해 2월 18일, 그날은 최 씨를 비롯한 260여 명의 환자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송금순(68세) 씨는 “전두환 노태우 등 자격 없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국립결핵병원을 국민의 정부라는 현 정부가 없애는 게 말이 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결핵환자가 43만 명인데도 불구하고 재정적 문제를 내세워 결핵사업을 포기한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

20년 동안 결핵에 시달려 왔다는 박원용(36세) 씨는 “지난 7년 동안의 병원비를 가족들이 부담해와 가족들도 많이 힘에 부치는 것 같다”며 “한 달에 1만원을 치료비로 내지만 그 만원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한 달에 50~60만원 정도를 치료비로 지출해야하는 민간위탁체제가 되면 결국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자신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환자의 반 이상이 수입이 전혀 없고 전체의 1/4는 영세민에 속하는 극빈자다.

김신호(55세) 씨는 “기적을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은 생활보호대상자라서 민간위탁이 된다고 해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같은 병실의 나머지 4명은 병원을 나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어 길거리를 전전하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결핵에 걸린 후 가족에게 전염되는 것이 두려워 가족과 헤어져 살았다”는 정종신(59세) 씨 역시 “지금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족들로부터 소외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 병원의 민영화로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대책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전 6개에 담긴 사연

투쟁을 계속해오던 지난 1년동안 가슴아픈 일도 많았다.

“19살 먹은 경미라는 아이는 조금만 무리를 하면 코피를 흘리는데 거리 서명전을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코피를 터트렸어요. 박원용 씨 또한 연이은 집회참가로 병이 악화돼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요”라고 말하는 비상대책위 위원장 배상훈(37세) 씨. 그는 집회참가를 문제삼은 병원측에 의해 문용호 씨와 함께 강제퇴원을 당하기도 했다.

이삼돌 할아버지의 얘기는 병원에서 잊혀지지 않는 가슴아픈 사연. “이삼돌 할아버지의 아들이 할아버지께 얼마의 용돈을 드린 뒤 오지 않더군요. 근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500원짜리 6개를 가지고 오시더니 투쟁기금으로 써달라고 하시더군요. 사연을 물어보니 ‘아들에게 전화를 걸려고 간직해온 전 재산인데 병원이 없어져서 아들이 못 찾으면 어떻게 하냐’는 생각에 다 들고 오신 거였어요”라고 말하는 환자의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화장실에서 먹는 약

4년째 결핵으로 고생하고 있는 조현숙(27세) 씨는 “친구들이 결핵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 두려워 친구들과 만나게 될 때면 화장실에서 약을 먹었다”며 “결핵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데 아픔을 감싸주어야 할 정부가 이렇게 결핵환자들의 가슴앓이를 시킨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지난 1월 청와대 앞 집회에 참여했다는 정종신(59세) 씨 역시 “민간위탁이 되면 다 길거리로 나앉아 죽을 날만 기다려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앞까지 갔어요.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전경뿐, 높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내다보지 않더군요. 왜 그리 서럽고 허망하던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핵환자들은 사회와 정부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끝없는 투쟁의 길을 걷는 결핵환자들의 승리를 기원하며 차마 돌려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