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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 기고] 대학도서관 개방운동의 의미 - 김지운 (<불한당> 편집위원)

정보의 사적 독점에 맞선 '올리브 프로젝트'

어떤 광고를 보았더니 중, 고등학교의 담이 없어지면서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또 얼마 전 신문에서는 몇몇 대학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담을 허물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기존의 폐쇄적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일종의 퍼포먼스로 담을 허물고 주민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충분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방했을 때 실제 알맹이가 될 것들은 그대로 둔 채 겉만 열어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도서관 앞에는 아직도 바코드 인식기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이 기계는 출입을 허가받지 못한 사람들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 학교 학생이 아닌 사람들에게 바코드 인식기는 출입을 막는 커다란 벽인 것이다. 대학의 담은 없어져도 대학도서관으로 가는 진짜 벽은 아직도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변하려면 아직 멀었다.


진짜 벽은 그대로 남은 대학

지역 주민의 출입을 가로막은 그 벽 안에는 공공도서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많은 수의 훌륭한 장서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일례로 성북구의 경우를 보자. 성북구민의 수는 총 44만 명, 성북구 공공도서관의 장서는 총 4만2천 권이니, 주민 1명당 장서 수는 약 0.1권 정도가 된다. 그에 반해 같은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의 장서는 학생 2만 명에 200만 권이다. 학생 1명당 100권 정도가 되는 셈이다. 공공도서관과는 무려 10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물론 대학은 연구를 위한 공간이기에 한 구의 공공도서관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100배 이상의 특혜를 단지 대학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독점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 일이 아닌가. 특히 요즘처럼 정보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에 정보 독점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팔 우려가 있다. 몇몇 대학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그 학교에 어떤 장서가 몇 권이나 있는지 검색하는 것조차 제한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정도는 심각하다.


정보의 사적 독점, 불평등 키워

'OLIB(Open LIBrary) 프로젝트'(아래 올리브)는 이와 같이 폐쇄적이고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 대학도서관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고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매체상상력, 생활도서관, 장애인권위원회, 불한당 등이 함께 시작한 운동이다.

대학도서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것만이 올리브의 목표는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정보의 사적 독점을 막고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대학도서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것과 동시에, '교육문화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기능의 복원'을 꿈꾼다. 현재 대학도서관은 취업준비를 위한 독서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사실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의 집산지이며, 고갈되지 않는 정보의 샘터로 기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올리브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역 주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대학도서관을 변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올리브는 대학도서관이 '소수자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는 것과 함께, 쉽게 이동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한 우편 서비스와 같이 적극적인 소수자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친인권 도서관 꿈꾸는 '올리브'

우리가 이와 같은 주장을 처음 내걸었을 때,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대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금도 도서관에 자리가 없는데 외부 사람이 들어오면 자리부족이 더 심각해지지 않겠냐는 것이 주된 불만이었다. 물론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학생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계속 대학도서관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서관과 독서실을 착각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도서관에 요구하는 '자리'는 독서실형 좌석이다. 이런 공간은 굳이 도서관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 따로 설치할 수 있다. 도서관 개방은 도서관에 있는 자료들을 나누자는 운동이다. 도서관에 자리가 없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도서관 개방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냈다는 이유로 도서관 개방을 반대하고 있지만, 등록금을 이유로 대학도서관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대학도서관은 대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도서관은 국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에서부터 졸업생들의 유·무형의 기여, 그리고 그 외 대학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받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그곳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대학도서관은 사회적 향유의 대상

좀더 근본적으로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의 성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대학도서관 개방의 의미는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는 흔히 대학을 출세와 영달을 위한 학벌 재생산 공장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대학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설립된 곳임을 생각해보면, 대학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지식을 사회적으로 환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학도서관에 쌓인 지식 또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쳐 박아 둘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열려나가야 한다. 대학도서관 개방은 바로 대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