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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화물운송노동자가 핸들을 두 번 놓은 까닭

물류대란으로 나라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박탈당한 생존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인가? 합의안을 이행하지 않은 채 교섭 테이블을 외면하는 화주·운송업체인가? 아니면 강경대응 방침을 공공연하게 밝혀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을 부추긴 정부인가?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하면, 5톤이상 일반화물차의 경우, 5대 이상을 보유한 회사만이 영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차량을 1대 보유한 화물운송노동자가 영업을 하려면 '지입 차주'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99년 7월부터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당시 18만대였던 화물차가 현재 34만여대로 불어나면서 공급과잉이 초래됐다. 이로 인해 '밑바닥으로의 경쟁'이 강제되고, 노동자들의 운송업체와 중간 알선업체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적자상태에 놓이게 됐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노동자들에게 남은 선택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뿐이었다. 지난 3월 윤영삼 부경대 교수가 화물연대 조합원 931명을 대상으로 노동·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80.7시간으로 전산업·전직종 노동자의 49시간(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1.65배에 달했다. 또 한달 평균 15일을 차량에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소득 -124만원, 평균 가구부채 3500만원.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의 혜택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왔다. 이처럼 생존권 확보조차 불가능한 상황은 화물노동자로 하여금 지난 5월 처음 핸들을 놓게 만들었고, 5.15 노정합의를 통해 그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되는 듯 했다.

언론들이 '화물연대, 또 파업'이라는 선정적 제목으로 보도한 지난 21일의 2차 파업이 일어난 까닭은 5.15 노정합의 이후의 전개양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당초 합의와는 달리 '방관적 입장'으로 일관했고, 화주·운수업체들도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현장에서는 개별 업체들의 탄압이 이어졌다. 조합원 탈퇴를 강요하고 불응시 계약해지 및 배차 불이익 조치가 가해졌다. 일례로 대한통운은 교섭 불참과 위수탁 계약서 상에 노조활동 금지조항 삽입을 강요했다. 때문에 교섭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현장에서의 투쟁은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정부는 7월 22일 당진 지역에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했다. 정부는 자신의 강제력을 화주·운수업체가 합의를 이행케 하고 법제도를 정비하는 데 쓰는 대신, 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탄압하는 데 동원했던 것이
다.

그러는 사이, 지난달 포항에서는 화물연대 조합원 한사람이 대여금 상환 협박과 부채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