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개인정보통제권 인정한 판례 있다

98년 보안사 사찰 대법 판례…"공개 안돼도 손해 발생"


네이스(NEIS) 중 개인정보 영역의 전면 폐기를 요구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 '자기정보통제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이미 나와있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나아가 이 판례는 '수집된 정보가 공개되기 이전에도 이미 손해는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는 '보안장치만 강화하면 네이스는 문제없다'는 교육부나 네이스 찬성론자들의 주장이 위헌적임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어서, 향후 네이스 문제에 주요한 좌표가 될 전망이다.

지난 98년 7월 24일 대법원 제3부(주심 송진훈 대법관)는 국군 보안사(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 보안사의 위법한 정보 수집과 관리로 인해 사찰 대상자들이 정신적 손해를 입었음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원고들에게는 국가 배상금 2백만원이 각각 지급됐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90년 10월 4일, 당시 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윤 씨는 보안사가 1303명에 이르는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재야인사 등을 대상으로 수집·작성해 온 사찰 자료 중 일부를 빼내 부대를 이탈한 후 이를 공개했다.


보안사 사찰카드와 네이스 항목 흡사

공개된 자료 중 450명의 개인별 기록카드를 보면, △성명과 생년월일, 체중 등 기본적 인적사항은 물론 △학력 및 경력(병역 포함) △전과기록 △교우 및 배후 인물 △개인 특성 △정당 및 사회단체 활동 등이 모두 기재돼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내용은 현행 네이스에 입력돼 있는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성적, 징계내용, 단체활동, 행동특성 등의 개인정보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노 대통령도 당시 사찰피해 소송 참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당시 사찰 대상자 가운데 소송에 참여한 145명의 원고인 명단에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이상수·이해찬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당시 보안사 사찰카드에는 노무현 씨의 개인특성 란에 "장기간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 국회진출 후 노동자 권익 빙자 각종 노사분규 개입 등 활동"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원고측 소송대리인으로 김창국 변호사(현 국가인권위원장)와 박주현(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헌법 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개인의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까지도 보장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며 개인정보통제권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다.


대법, "자기정보통제권도 헌법 기본권"

또한 대법원은 보안사가 원고들의 동향 파악과 감시를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개인의 활동이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비밀리에' 수집, 관리하였다면, 이는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는 개인정보는 본인의 동의를 거쳐, 본인으로부터 직접 수집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보 수집 자체로 이미 손해는 발생"

나아가 판결문은 '사찰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피고(대한민국)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보안사령부가 위법하게 원고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관리함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는 윤석양이 위와 같이 사찰관계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이를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손해가 윤석양에 의한 사찰관계 자료의 공개에 의하여 비로소 발생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원고들에 관한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야 손해가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수집 자체가 이미 정신적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스, 해킹 없어도 이미 인권침해

이 판결은 비록 보안사가 민간인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활동을 감시하고 사적 정보를 수집한 행위에 제동을 건 것이지만, 현행 네이스 체제에도 인권침해를 이유로 제동을 걸 수 있는 법률적 판단을 제공하고 있다.

대법의 판례대로라면, 교육부가 학생·학부모·졸업생 등 본인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각급 학교에 모아진 정보를 넘겨받아 네이스를 운영하는 행위 자체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또 네이스에 보안장치를 강화해 설령 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피해를 가져오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판례의 취지는 그간 네이스에서 개인정보 영역을 폐기할 것을 주장해 온 인권단체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네이스에서 몇몇 항목을 제외하고 보안장치를 강화하는 것은 결코 인권침해를 종식시킬 수 없음을 대법원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