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의문사한 전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씨 사건을 수사 지휘했던 정윤기 검사가 당시 프락치 전모 씨를 보호하기 위해 범인은닉죄를 적용, 구속했던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16일 오전 11시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전OO가 프락치 역할을 한 것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만약 전OO가 밖에 나가면 학생들에게 납치될 것 같아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정윤기 검사에게 찾아가서 이야기하여 전OO를 구속"했다는 당시 담당 형사의 진술을 공개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프락치 전씨는 담당 형사와 함께 정 검사를 찾아가 자신의 프락치 활동을 직접 보고하고 지휘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전씨는 수배 중이던 선배 김준배 씨를 추석 연휴동안 자신의 자취방인 광주 북구 소재 청암아파트 1308호에 머물게 한 후 경찰에 제보를 했다. 제보를 받은 경찰은 1개 소대 병력을 동원해 김씨의 검거를 시도했고, 김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케이블선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진 후 경찰의 구타로 사망했다. 사건 후 전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프락치라는 의심을 받았지만, 결국 범인은닉죄로 구속기소된 후 보석으로 풀려나 징역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의문사위는 "범죄자를 제보하고 경찰과 약속대로 김준배와 함께 있었다면 범인은닉죄의 고의가 없어서 그러한 죄로 의율(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던 정윤기 검사는 신변보호를 위해 전OO를 설득하여 구속해야 한다는 경찰간부의 건의를 수용해 법원을 기망하여(그럴 듯하게 속여)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지난 9일 김준배 사건 발표 당시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 황인성 사무국장은 "조사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을 좀더 분명하게 언론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정례브리핑 취지를 밝혔다. 사건 발표 직후 정 검사가 각 언론사에 팩스를 보내 "김준배 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니며 김씨의 사인은 추락사가 명백하다"라며 의문사위의 결정을 반박한데 따른 것이다. 황 사무국장은 "이는 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의문사위 김준곤 상임위원도 "김준배 사건 발표 후 검찰 스스로 잘 처리해 주기를 바랬"지만, "정윤기 검사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위원회가 마치 법에도 없는 일을 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라며 정 검사를 꾸짖었다. 의문사위는 정 검사를 고발하지 않고 수사기관인 검찰 자체의 감찰과 그에 따른 조처를 권고한 바 있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당시 전씨가 프락치였다는 의혹이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라며, "검찰은 사건을 은폐·축소·조작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정윤기를 파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고 김준배 씨 유가족 및 추모단체들은 15∼16일 정 검사가 지청장으로 있는 영월지청 앞에서 규탄투쟁을 벌이며 정 검사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 검사는 면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