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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병원감염', 경계 경보

환자들, 집단감염에 손배소송…병원, '보복성' 퇴원압력


사건은 ᄋ병원 7102호(신경외과 6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4명의 환자가 올 2~3월 MRSA, VRE라는 '수퍼 박테리아'에 집단적으로 감염되면서 시작됐다. ᄋ병원은 이들 환자와 가족들에게 처음엔 그냥 염증 정도로만 이야기했다가,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져 가족들이 따지자, 그제서야 MRSA와 VRE에 감염된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MRSA(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와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에 감염되면 고열․구토․설사 등을 수반하며, 박테리아가 혈액을 침범해 전신에 염증을 일으키는 폐혈증이나 혈액 자체를 썩게 만드는 균혈증으로 악화된다. 이들 균은 거의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기 때문에, 감염 후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죽음의 병실, 7102호

그런데 감염되기까지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환자 가족들은 ᄋ병원이 VRE에 감염된 강모 씨를 제때 격리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7102호에 있던 다른 환자들 모두가 감염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즉 '수퍼 박테리아'에 대한 병원 쪽의 안일한 대응이 집단감염의 원인이라는 것.

실제 ᄋ병원은 올 1월 9일 당시 7101호에 있던 강씨가 VRE에 감염된 사실을 처음 확인한 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3일만에 1인실로 격리시켰다. 강씨는 여기서 2주 정도 치료를 받은 후 같은 달 26일 7102호로 옮겨졌으며, 일주일 후인 2월 2일 다시 고열과 설사증세가 나타났다. 그리고 한달 후인 3월 15일에 다시 1인실로 격리됐다.

결과적으로 강씨가 7102호에서 치료받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세 환자들이 모두 MRSA와 VRE에 감염된 셈이 됐다. 그렇기에 병원 쪽은 급기야 7102호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글자 그대로 7102호는 '죽음을 부르는 병실'이었다.


병원감염 관리체계 없어

'병원감염'이란 입원 당시 나타나지 않았고 잠복상태도 아니었던 감염이 입원기간 중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최근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내성이 강한 병원감염이 출현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MRSA와 VRE다.

ᄋ병원에서는 MRSA에 감염된 자가 이미 10여 명이고, 이 중 사망에 이른 사람도 2명이나 된다. MRSA나 VRE에 감염된 환자는 환자 이름표에 감염된 사실이 적시된다. 이에 따라 환자 쪽은 "MRSA에 감염된 사람이 이보다 훨씬 많다"며, "하지만 환자들 스스로도 MRSA가 뭔지 잘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송대리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감염 건수에 대해 "미국만 해도 한해 6만명이 넘게 보고된다"며, "한국에서는 한 병원당 1백~2백건 정도로 한해 4만건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신 변호사는 △현행 의료체계가 '행위별 수가제'이기 때문에 약이 남용되고 있다는 점 △병원감염에 대한 국가 전체의 관리체계가 없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행위별 수가제란 약 등 서비스가 제공된 개수에 비례해 진료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인의협 우석균 정책실장은 "병원 측이 병원감염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국가가 병원의 질 관리를 엄격히 하고 환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병원감염 수치를 공표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만 해도 병원감염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국가에 배상책임 물어

항생제 내성균 격리지침에 따르면, MRSA와 VRE가 검출됐을 때 담당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격리해야 하며, 이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병원 쪽은 제때 격리하지도 않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병원감염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환자들은 ᄋ병원의 관할기관인 양천보건소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양천보건소는 ᄋ병원의 입장만 두둔할 뿐, MRSA와 VRE 감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실태를 조사한다거나 대책을 강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환자들은 지난 5월 15일 ᄋ병원을 상대로 이번 의료사고를 일으킨데 대해 1억원을 손해배상 청구했다. 동시에 "병원내 감염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나 행정지도감독을 하지 않고 방치해 이로 인한 사망, 식물인간상태 등을 반복 확대"시켰다며 국가를 상대로도 1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병원의 보복성 퇴원압력

하지만 ᄋ병원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환자들에 대해 오히려 '보복성' 퇴원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경외과 김모 교수는 한 환자의 아들인 박모 씨에게 "병원이 소송까지 걸렸는데, (당신들은) 계속 치료하고 싶냐"며, "병원을 옮기든지, 퇴원을 하든지..." 선택을 강요했다고 한다. 또 환자들의 항의에 따라 MRSA 감염 후 청구되지 않던 치료비가 최근 다시 청구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환자들 입장에서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곳에 가면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며 병원 쪽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신현호 변호사도 "병원감염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며, "병원감염에 대해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판결이 날 때까지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보고 싶다"고 의지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