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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하종강의 인권이야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치자


우리 국민들이 입이 닳도록 외우는 시조가 있다. 조선 후기에 영의정을 지냈던 남구만(南九萬)의 시조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아이들 참고서에 보면 이 시조에 대해서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훌륭하게 묘사한 시조이다” “농가의 부지런한 생활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백성들에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강조하는 뜻이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그렇게 가르치고 시험에 나오면 그렇게 써야 정답이다.

이 시조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양반이 아랫목에서 느즈막히 잠을 깨었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떠있고 종달새도 우짖고 있다. “아이쿠, 내가 늦잠을 잤구만. 그런데, 저 나이 어린 머슴놈도 아직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놈이 오늘 언덕 넘어 넓은 밭을 전부 다 갈아야 하는데, 그놈도 아직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도 덜도 없이 바로 이같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을 머슴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곤죽이 되게 일을 하고, 황토바닥에 거적때기 한 장 깔려있는 머슴방에 와서 그냥 쓰러져 잤을 것이다. 새벽이 올 때마다 이 나이 어린 머슴의 가장 큰 소원은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머슴의 ‘관점’으로도 같은 상황을 ‘농촌의 목가적 풍경’이라고 한가롭게 노래할 수 있었을까? 머슴의 관점만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강요할 맘은 없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올바른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도 한 번 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이 시조에 대해서 백번 쯤 설명할 때 단 한번이라도 “같은 상황을 머슴의 입장에서 한번 볼까요?”라고 가르쳤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가끔은 머슴의 입장에도 서 볼 수도 있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중요한 사실을 천번에 한번, 만번에 한번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 제도권 교육이다.

그러니, 그 ‘음모의 시스템’ 속에서 십수년을 교육받은 한국통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나몰라라할 수밖에 없다. ‘한번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우리 사회에서 훈련받은 캐리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캐리어사내하청노조를 무참하게 짓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찌들어온 그 음모의 시스템을 분쇄해야한다. 노동자들이 그 ‘가면의 거짓’을 뚫고 솟아나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