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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거창사건은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1년 2월, ‘공비토벌’을 명분으로 육군 11사단 9연대가 경상남도 거창 일대에 거주하는 민간인 7백여명(최소 추정치)을 학살한 사건으로 51년 3월 제헌의원 신중목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국군은 이른바 견벽청야(堅壁淸野)라는 중국 장개석의 전술개념을 차용해 “지켜야 할 거점은 벽을 쌓듯이 확보하고, 부득이 적에 내 주어야 할 지역은 건물을 파괴하는 등 깨끗이 쓸어버린다”는 작전을 수행했다. 이 작전에서 국군은 아동과 부녀자, 노인 등을 포함한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옥 방화, 재산 약탈, 부녀자에 대한 성폭행까지 자행했다.

민간인 학살 사실이 폭로되자 국회는 ‘거창사건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지조사에 착수했으나 공비로 가장한 국군의 방해에 의해 현지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거창경찰서에서 증인신문을 하는데 그쳤다. 이후 군법회의가 열려 11사단 9연대 소속 장교 오익경 대령, 한동석 소령, 이종대 소위, 김종원 대령이 기소돼 4인 전원 무기징역․징역10년 등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 중 형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한 소령과 같은 경우 군 관련 요직까지 거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한편, 거창사건이 분명한 민간인 학살사건임에도 불구하고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피해자나 유족들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피해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희생자 유족들은 95년 입법 청원을 하기까지 이르렀고 이듬해인 96년에 마침내 피해자 위령사업과 유족들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를 골자로 하는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아래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정작 그동안 유족들이 당해왔던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 부분은 빠져있어 유족들의 원성을 샀다. 학계나 연구자들도, 비록 군 장교 일부가 사법처리되긴 했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부분을 특별조치법이 여전히 배제하고 있어 반발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공동대표 강정구, 아래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돼 올해 1월 임시국회에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던 모든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통합특별법’을 입법청원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특별법이 제정된 경우는 아직까지 거창양민학살사건과 제주 4․3 사건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