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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재숙의 인권이야기

수첩을 지우며

세밑이 가까워오면서 저절로 하게 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수첩정리다. 머리 크고 만났던 사람들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지울 건 지우고 남길 건 남긴다. 컴퓨터나 전자수첩이 좋다 해도 연필로 꾹꾹 눌러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헐어서 너덜너덜한 검은 수첩 한 권에 지난 십 몇 년이 묻혀 있다. 해마다 고무지우개가 지나간 자국이 늘어난다. 인연이 질긴 이름 몇 개가 까만 연필심 번짐 속에 빛난다. 그걸 되풀이 읽는 속맛도 쏠쏠하다.

"내 호가 왜 조한알이냐 하면 나는 노란 그 잡곡 한 알에 다름 아니다. 내가 별거 아니라는 얘기네. 나도 인간이라 빳빳하게 머리 세우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주문같은 거지" 조한알 장일순 선생 이름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수첩 ᄌ자 대목 첫머리에 올라 있다. 햇병아리 기자가 얼굴이 벌개서 그럴듯한 질문을 찾느라 쩔쩔매는 걸 편안하게 잡아주셨다. 그가 원주 가톨릭을 중심으로 일궜던 반독재 활동보다 조한알이란 호 내력이, 논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논둑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얘기 들어주고 막걸리 한 잔씩 걸친 일이 많다며 "내가 만고 무능군자 아닌가" 웃던 모습이 더 오래 남았다.

"서울 사람들이 더 불쌍하죠. 제가 더 미안하죠" 했던 이는 동화를 쓰는 권정생 선생이다. IMF 시련이 한창이던 98년 봄에 그는 한 달에 5만원쯤으로 살았다. 1년에 채 1백만원을 못 써봤다는 그는 "사람이 절대 훌륭해선 안 되요.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층민이 생기잖아요. 잘난 놈들이 위에서, 앞에서 까부니까 세상이 점점 나빠져요" 슬퍼했다. 애국자가 없으면 세상이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개똥 사랑하면 가슴이 덜 떨리고 힘도 덜 소모돼요" 털어놨다. '오물덩어리처럼 딩굴면서', '강아지똥'처럼 제 몸 부숴뜨려 꽃피우듯, 큰 길에서 비껴 사는 목숨들이 "살다 가고 살다 가고 하는 게 좋드라고요" 검정 고무신 신고 봉당에 내려서며 말했다.

20여년 옥살이 끝에 세상에 나온 노촌 이구영 선생이 한 말을 이랬다. "옥에서 보낸 시간이 오히려 내가 죄짓는 걸 면하게 해줬다고 봐야죠. 밖에 있었으면 으레 남 부리고, 남 덕에 먹고 살았을 텐데 그 죄 짓는 대신 그걸 깨고 살 수 있게 해 줬으니 복이라고 할 밖에요." 무슨무슨 '주의자'보다 사람답게 사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으면 헛 산 목숨은 아니라던 그이 말은 옥에서 시작한 뒤 쉼없는 한문 강의가 길러낸 남녀노소 제자 수백명으로 열매를 맺었다. "어쨌든 난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그거보다는 고루 함께 잘사는 사회가 좋아요."

비 내리고 추워지는 날씨에 또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그들 응달에 선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주의자'들 큰 목소리만 우렁차다. 때 낀 수첩을 지우면서 그 작은 소리들이 두런두런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을 가만히 듣는다. 피똥싸는 거기 그 땅에서 민들레 한 송이가 다시 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