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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 철거촌 두 풍경


◎최촌마을 주민들의 천막농성장

침대 매트리스가 나란히 깔린 천막 안에 한 소녀가 쓰러져 잠을 청하고 있다. 인기척에 놀라 일어난 소녀는 낯선 남자의 출현에 잠깐 당혹스러워 했다. '기자'라는 설명에 안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는 대화를 나누는 시종 수줍은 손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경기도 구리시청 입구의 10평 남짓한 천막. 이곳이 다슬이(구리여중 1년)의 현 주소지다. 6개월 전까지는 '최촌마을'에 살았지만, 살던 집이 다 철거된 이후 엄마아빠를 따라 천막으로 '이사'를 왔다. 다슬이의 천막에는 모두 네 가구 14명이 산다. 최근에 시청과 싸우던 아줌마 두 분이 구치소에 갔기 때문에 지금은 12명. 그 중엔 미취학 어린이 3명과 초등학생 1명, 중학생 3명이 포함돼 있다.

최촌마을은 지난해 여름 강제철거 반대투쟁이 거세게 벌어지면서 주목을 받게 된 지역이다<관련기사 본지 4월 8일, 99년 7월27일, 8월 4일>. 올 4월 남아있던 가옥들마저 모두 철거를 당하자 주민들은 시청으로 옮겨와 천막농성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농성의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 전망은 밝지 않다. '가수용시설' 마련과 '임대주택 입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입장을 건설회사측에서 전혀 수용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이들을 '돈 더 받아내려는 집단'으로 보기도 하지만, 누구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저항'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다슬이는 비올 때 비 새는 것, 여름엔 더위, 지금은 아침저녁의 쌀쌀함이 견디기 어렵다면서도, 그마저 이젠 익숙해졌다고 한다. 천막이 왕복 6차선 도로 바로 옆에 위치했기에 자동차들의 소음이 '기자'의 귀청을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데도, 그 또한 다슬이에겐 '익숙한 것'에 불과했다. 다슬이에게 바램이 있다면 공부를 맘껏 하고 싶다는 것. 학교에 혼자 남아있기 싫어 집(천막)으로 돌아오지만, 천막 안에선 아무 공부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냥 집"이면 다 좋다는 것이 수줍은 다슬이의 요구사항이었다.


◎울타리 너머 딴 세상, 인창마을

최촌마을에서 한 정거장 지난 곳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뺑 둘러쳐진 철제 울타리 안으로 포크레인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한쪽 편에 나무판자와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엮은 집 30여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구리시 인창동 인창2지구 91번지. 90년대 초반까지 벽돌공장의 사원주택이었던 이 곳도 이제 철거가 머지 않은 곳이다. 많은 주민들이 이주하고 남은 주민은 이제 5세대. 이미 철거를 하라는 행정대집행 명령이 떨어진 곳이지만, "최촌마을 덕택에" 아직 철거의 긴박함은 면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