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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장애인들은 나다니지 마시오?"


4월 20일은 스무 돌을 맞는 장애인의 날. 해마다 이맘때면 장애인의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절정에 이르지만, 이번 장애인의 날에도 장애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집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없고, 쉴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공항에 장애인 데스크가 설치됐다는 소식이 일간지를 통해 보도됐다. 그러나 '흐뭇해야 할' 소식에 미간부터 찌푸려지는 까닭이 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편의증진법)에 따르면, 관공서와 공항 등 주요 공공시설은 지난 10일까지 '당연히' 편의시설 설치를 완료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의 데스크 마련을 마치 대단한 사건인 양 자랑하고 칭찬하는 모습에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법적기한인 지난 10일까지 공공시설의 60%가 편의시설 설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의지부족이란 비난이 쏟아져 나올까 걱정됐는지 "예산상의 어려움 때문"이라며 선수를 쳤다. 덧붙여 "미비한 시설에 시정권고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일선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점을 시정해야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느냐는 물음에 돋보기를 들이댈 뿐이다.

편의시설 설치가 60%정도 완료됐다는 정부의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편의증진법에 따르면 공공시설의 진입로 경사 각도는 15°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서울 서대문 구청의 진입로는 30°가 넘는 급경사여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야할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곳을 편의시설이 완비된 곳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경찰청이 마련한 장애인 화장실은 출입문이 비좁아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다.

편의시설 설치에 무관심한 시민사회단체들의 태도는 장애인들의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한다. 일부 장애인단체들은 편의시설 설치 기한이 10일까지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고, 여성단체들은 편의증진법이 여성(임신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관심하다. 오히려, 장애인 관련법에 왜 여성단체가 신경을 써야하느냐는 반응이다.

이제 편의시설이 미비한 공공시설은 시정명령을 받게 되고 과태료를 납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이 거리로 나서는 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