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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네바 인권소식 ②> 강대국 등쌀에 인권논의 흙탕물

미·중·러·쿠바 등 인권 공방

인권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강대국들의 버릇이 이번 인권위원회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지난 23일 오후, 평소와 달리 2백여 명에 이르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는 유엔인권위원회 회의장은 삼엄한 경비 속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수퍼 파워'를 행사하는 미 국무장관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우선 파룬궁 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를 예로 들며, "중국에서는 정치적 신념을 평화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도 체포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나아가 "올해에는 중국에 대한 결의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결의안'이란 중국의 인권침해 규탄 결의안을 의미한다. 지난해 인권위원회에서 미국이 제출했던 '중국에 대한 결의안'은 부결된 바 있다.

또한 올브라이트 장관은 "카스트로 체제는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고 의사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고, 러시아 연방은 체첸의 민간인들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쿠바와 러시아 연방에 대한 규탄을 서슴치 않았다. 수단, 버마, 이라크 그리고 이란 등도 그녀의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에 쿠바, 중국 등은 회의 끝 무렵 반박권을 얻어 미국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차오 종화이 중국 정부 대표는 "인종차별, 경찰 폭력, 감옥 내에서의 고문,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 캠퍼스 안에서의 총기 난사 등 미국 사회의 인권 침해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미국은 중국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국의 인권상황부터 돌봐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연방 대표는 "체첸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 영토를 지키기 위한 행위"라며 변명에 열을 올렸다.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본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표정은 씁쓸했다.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 대표들의 발언에도 그 나라 국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회의장엔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 없이 외교적 이익만을 쫓는 정부 대표들의 얼굴이 출렁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