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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소유권 대 향유권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과 비소유권 혹은 향유권을 주장하는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길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한편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큰 건물을 지으려는 이에게 팔려고 하고, 다른 한편에 그 토지를 소유하지는 않았으나 향유한 이가 있어서 토지를 팔지 말 것을 요구한다. 토지 소유자는 그 동안 소유권도 없이 향유한 것만으로 만족할 일이지 이제 자기는 토지를 팔 것이니 아무 참견도 하지 말라고 한다. 토지 소유자의 이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고, 토지를 소유하지도 않고 향유해온 사람이 소유권 행사에 참견하는 것은 너무 주제넘은 짓일까?

얼핏 보면 그렇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토지를 소유한 사람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요, 따라서 사적인 권리인 반면 토지를 향유하려는 사람의 권리는 한 개인의 권리를 넘어서는 집단의 권리이고 따라서 공익적 권리에 더 가깝다.

여기서 ‘공익적’이라 함은 ‘근원적’이라는 말과 통한다. 좀더 근원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향유할 뿐이지 소유하지 않는 법이다. 하늘에 떠서 사방을 밝히는 태양, 밤하늘을 포근하게 해주는 달, 나아가 물, 공기, 나무, 꽃, 강과 산과 같이 태초부터 있던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원칙을 뒤흔들어 놓았다. 공유와 향유가 소유에 선행하며, 공익이 사적 소유권 행사에 먼저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인사동에는 사적 소유권과 공적 향유권 사이에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인사동길 중간쯤에 있는 약 450평 남짓한 땅의 주인이 거기에 대형건물을 짓겠다는 부동산 업자에게 땅을 팔기로 했다고 한다. 땅주인과 부동산 업자는 내 땅, 내 돈 가지고 팔고 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지극히 사적인 거래를 한 결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문화적 향유권이 침해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한복판에 대형건물이 들어서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인사동은 망하게 생겼다. 문화적으로 피폐한 서울에서 보기 드문 ‘문화적 갯벌’을 제공하고 있는 인사동의 생명력은 가게, 골목 등 작은 것들에서 나온다. 대형건물이 들어서면 이 작고 소중한 것들은 사람들이 향유할 문화적 토양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다.

소유권 지상주의는 자본주의가 당연시하는 사특한 이기주의가 판을 친 결과이지만, 그 결과 우리가 향유할 대상들이 사라지고 있다. 문화적 갯벌 인사동을 지키려면 후안무치한 소유권 행사 대신 공유와 향유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