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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스케치> 유가협 농성 1년을 맞아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아들 딸 앞세운 어미가 뭐 할 말이 있어야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거리로 나오긴 했는데 죽기 전에 특별법 제정되는 거 보는 건 다 틀린 일 같아.”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위로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지난해 11월 4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 배은심, 유가협) 회원 30여명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하며 시작됐던 천막농성은 한 해를 넘겨버렸고 마침내 사계절을 한 바퀴 돌고야 말았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농성을 시작한지도 꼬박 1년.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고 살아온 시간으로도 모자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이불을 깔고 1년의 낮과 밤을 눈물로 지샌 것이다.


메아리 없는 외침 언제까지…

지난해 4월부터 유가협 회원들은 법 제정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및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한 후 5만2천9백여명의 국민서명을 첨부한 법 초안을 9월 15일 국회에 제출했다. 수 차례에 걸친 대통령과 각 정당 대표자 면담. 그리고 또 수 차례에 걸친 삭발과 단식투쟁. 매번 치솟는 울음을 삼키며 다음엔 될 거라며 하루하루 버텨왔건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안은 국회를 맴돌고 있다.

“집에 못 들어간지도 2년째네. 우리 집은 귀신이 사는 집이 돼버렸어. 정부가 바뀌면 세상도 바뀌고 우리 자식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세상이 바뀌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가봐. 법안은 통과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지 참 막막하기만 하네.” 5평 남짓한 천막 안에서 두꺼운 겨울잠바를 걸치고 앉아있던 배은심(고 이한열 씨 모친) 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 끝에 배 씨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4일 날은 우리 유가협 회원들 다 불러놓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고 얘기할 참이네. 어차피 시작한 거라면 어떻게든 끝을 봐야지 이대로 물러설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리야 이제 다 산사람인데 이거라도 만들어놓고 가야지 좀 편하지 않겠는가”라고. 농성 364일째란 팻말이 붙어 있는 여의도 유가협 천막농성장에 쓸쓸함이 감돌았다.

유가협은 회원들은 4일 농성 1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결의와 각오를 다질 계획이다. 메아리없는 이 외침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