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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조계사 수배자들의 설 쇠기

“차례도 올리고, 세배도 드릴 겁니다.”


“환장하게 좋아하면서도/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다가/ 나는 못내 심란해져…”

유병문(27세)씨는 또한 말했다. “아무런 염려도/ 부담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네”라며 수배생활의 아픔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고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올해도 그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지난 96년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이 죄가 되어 수배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갈 수 없는 것은 유 씨만이 아니다. 양심수들은 감옥 안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향해 세배를 드리는 것으로 새해인사를 대신할 것이고, 김영삼 정권 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동료 57명 역시 지척에 집을 두고서도 돌아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았다. 미약하나마 3․1절 특사에서 수배자들에 대한 수배해제가 논의되고 있고, 수배해제가 되는 날까지 계속 투쟁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정치수배를 받은 사람들이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조계사에서 기약 없는 농성을 시작한지 188일째. 수배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사면에서 양심수 석방이나 정치수배해제, 청년 양심수 군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현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고. 그리고 말한다. “아무리 가족이 그립고 수배생활이 고달프더라도 정권이 원하는데도 경찰에 자진출두를 하거나 양심을 꺾는 준법서약서 따윈 쓰지 않을 겁니다.”라고.

비록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설이지만 조계사의 수배자들은 설 준비로 바쁘다. 지난 시간 친어머니처럼 돌보아주신 민가협 어머니들과 수배자 부모님을 모시고 떡국도 대접하고 16일에는 조촐하게나마 차례를 치를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명절인데, 이발도 하고 청소도 좀 해야죠” 라며 웃는 수배자들. 하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길은 아직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