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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과외가 필요하다 - 불법고액과외 파문을 바라보며

나는 몰래바이트 과외 교사, 나의 교습 활동은 위험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육활동으로 잘 인정하려 들질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과외 교습의 건전성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나의 과외 교습은 고질적인 학습 지진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은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 학생들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근본 이유는 공부를 하는 목적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내 학생들은 오로지 좋은 대학, 취업이 잘되는 과에 가려는 생각 밖에 없다. 그것이 좋은 직장과 지위를 가져다 주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격,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심을 기르고, 사회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유 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유엔 어린이․청소년 권리조약 제 29조: 교육의 목적)에 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내 학생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공부의 목적이 부족한 내 학생들은 또한 공부 방법도 모른다. 스스로 ‘참여’하여 경험하는 속에서 남의 말을 잘 듣고 자기 말을 조리 있게 표현하며, 그것을 종합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길을 놔두고 딴 짓을 하려한다. 요점만 추려서 외우려 하고, 쪽집게로 집어서 입에다 넣어 주는 것만 받아먹으려 한다. 일방적으로 전달만 받으려 하니 학습 효과가 오를 리가 없다. 또한 수업 분위기를 많이 흐린다. 내 학생들은 ‘경쟁’만 하려 들기 때문에 ‘협동’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 규칙이 먹혀들질 않는다.

내 학생들은 얼굴을 보여야 할 때 잘 숨는다. 잘못을 저질러서 피의사실을 통지받았으면 법률에 따른 공정한 심리를 받아 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고개만 책상 밑에 박고 있다가 수업시간이 어서 끝나 종이 치기만을 기다린다.

그런 학생들이 제일 취약한 과목은 산수이다. 제로(0)에서 수천만원이 절로 생겨나 곱하기 나누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0)에서는 수천만원이 절대 생길 수 없다고 얘기해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수천만원을 몇 번 더하면 도시락을 못싸와 밥을 굶는 아동 1만7천여명을 먹일 수 있을까요?”하는 문제는 풀어볼 엄두도 못낸다.

사실, 내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데는 공부할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도 크다. 일제통치와 분단, 오랜 세월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비판보다는 순종을 강조해 왔고,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기보다는 경제적 필요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기능인이 되라고 채찍질해왔다. 그걸 따라 공부하느라 허덕여왔기 때문에 내 학생들은 학습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내 학생들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더 비뚤어진 것 같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따라 배우는 것이 있을텐데 시험 때만 되면 찾아와서 들쑤셔놓고 가는 ‘언론’이라는 친구와 이리저리 말만 바꾸는 ‘교육당국’을 친구로 사귀고 있으니 정말 걱정이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교실에만 갇혀서 문제은행만 들고 있는 내 학생들이 안타깝기만 한다. 이웃학교에선 ‘유엔인권교육 10개년(1995-2004년)’이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다 해서 좋은 책과 비디오에 실습 프로그램도 많고, ‘개발교육’, ‘평화교육’ 등 선택 과목도 많은데 내 학생들은 그런 것들을 구경조차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빨리 정규 교육이 제자리를 잡아서 나같은 과외 교사가 필요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니, 나같은 과외 교사들이 많이 생겨서 학생들이 풍부하고 다양한 과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지난 8월 28일 족집게 과외를 시킨 학부모들을 소환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립 대학인 서울대 총장 딸이 고액 과외를 받았다는 얘기와 누구누구는 45일에 2천만원을 냈다, 한달에 8백만원을 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정작 이 속에서 상처받고 빼앗긴 학생들의 권리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경쟁적인 풍토는 아동이 잠재된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책임 있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가로막을 위험을 안고 있다(96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권고사항)”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아동에게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논의가 빠진 소동 속에서 학생들은 다시 문제지와 참고서로 눈을 떨군다. 우리의 학교에는 인권에 관한 과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