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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 ①

구타와 가혹행위

부랑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로 알려져 있는 충남 ‘양지마을’에서는 사실상 육지 위에 떠있는 노예선이나 다름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었다. 인권유린 현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타와 가혹행위 역시 양지마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대표적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주>.


1. 죽도록 맞고 감옥 간 박종문

양지마을에서 벌어진 가장 대표적인 구타사건으로 원생들은 박종문(40대 중반) 씨의 사례를 꼽는다.

지난해 여름 양지마을로 끌려온 박종문 씨는 직업을 묻는 ‘손 주임’에게 “전기회사에서 총무일을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손 주임은 “진짜로 총무 일을 봤냐?”며 박 씨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에 박 씨가 계속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자 무려 수십여분 간 박 씨를 구타했다.

당시 구타장소는 식당 앞 공터였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구타 시간이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 넘는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김 아무개 씨의 증언. “구둣발로 계속 가슴을 걷어차는데 발이 휠 정도로 강하게 걷어찼고 이단 옆차기까지 날아갔다. 손으로는 얼굴을 무수히 구타했고, 박종문이가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 사람 맷집 정말 좋았다. 그렇게 맞으면서까지 ‘총무 일을 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중에 옷을 열어보니 온몸이 시커멓게 멍들었고, 얼굴은 쳐다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박종문 씨는 구타를 당한 이튿날 방화사건으로 구속된다. 식당 건물 옥상에 있는 가스통을 열고 거기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원생 가운데 간부직을 맡았던 이 아무개 씨의 증언. “종문이는 자신이 죽더라도 이곳의 실상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방화를 결심했던 것으로 안다.”


2. 멋모르고 당한 신입생

방만식(52) 씨는 지난해 8월 온양역전에서 술을 마시다 붙잡혀 양지마을로 끌려왔다.

방 씨가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한 것은 입소후 6일째 되는 멋모르던 신입 시절. 작업(호차 작업)에 투입된 그는 선배 원생들로부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가 4년에서 8년 이상 양지마을에 붙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방 씨는 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지마을 사정에 어두웠던 그는 무심코 열려있던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당연히 정문을 지키던 경비에게 붙잡혔고, 이후 방 씨에 대한 가혹행위가 시작됐다.

‘도망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방 씨는 광목천으로 두 손이 묶인 채 감금되었다. 피가 통하지 않는 두 손이 시커멓게 변해가자 방 씨는 “풀어줄 것”을 호소했다. 방 씨가 계속 소리를 지르자 그를 감금한 ‘조 실장’은 △손목을 뒤로 꺾어 창문쇠창살에 묶거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방 씨는 이 때 왼쪽 어금니 하나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멈추지 않던 방 씨는 “죽여서 산에 묻어버리겠다”는 조 실장의 협박에 결국 “살려만 달라. 시키는 대로하겠다”며 빌었고, 그제서야 가혹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 대들다 정신요양원으로

95년 여름, 여자 생활실 복도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원생 전숙영(38) 씨가 세숫대야로 유리창을 깨뜨린 사건이 벌어졌다. 전 씨는 양지마을에서 내보내주지 않는 데 대한 불만으로 유리창을 깨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전 씨의 행동은 양지마을에선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씨를 직접 결박했던 이 아무개 씨의 증언. “원장이 전숙영을 묶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XX년아, 왜 유리창을 깨냐’며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자 전숙영은 ‘원장이라는 놈이 왜 약한 여자를 묶어 놓고 때리냐. 차라리 죽여라’며 대들었고, 원장은 환자들이 사용하던 쇠지팡이로 전숙영의 머리통을 내리쳐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이후 8일동안 전 씨는 양손을 묶인 채로 남자 생활실 복도에 놓인 침대 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부터 그에게는 CP(신경안정제)가 투약됐다. 이 씨는 “오 간호사가 CP를 먹였다”고 밝혔다. 이후 약 20일 만에 약을 끊게 된 전 씨가 단식을 시작하자 오 간호사로부터 “저 X년, 속 썩힐 필요없이 송현원에 쳐 넣어”라는 말 한마디가 떨어졌다. 이후 전 씨는 지금까지 송현원(정신요양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