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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고문…자포자기…허위자백

남한조선노동당사건 양홍관 씨 폭로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주요과제로 떠오르는 '안기부 개혁' 문제 가운데 과거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진실규명과 사죄, 책임자 처벌의 문제는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9일 민가협 집회에서 발표된 양홍관 씨의 편지는 안기부의 고문과 관련된 충격적인 고발이다 <편집자주>.

92년 9월 12일 오후 1시경 집 앞에서 승용차 3대가 와서 서더니 10여명의 사람이 달려들어 차에 태우려했다.

'왜 잡느냐' '누구냐'며 소리를 질렀더니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차안으로 밀어 넣고 수갑을 채웠다. 영문도 모른 채 차를 타고 한참을 간 후 어디인지도 모를 건물 앞에 세우더니 지하실 방으로 끌려 내려갔다.

지하실 방에 끌려 내려가자마자 수사관 7-8명이 달려들어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발로 온몸을 짓밟았다. 그리고 옷을 벗으라고 강요하여 이에 거부하니 수사관은 또다시 구타를 일삼으며 옷을 벗겼다.

'네가 여기 온 까닭을 잘 알 테니 스스로 얘기해라'며 추궁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너희들이 누군데 이러느냐'며 불법적으로 연행해 온 까닭을 물었다. 그랬더니 7-8명 정도가 양팔을 잡고 주먹으로 치며 '네가 있는 조직과 조직에서 너의 위치를 대라'고 하길래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1-2시간쯤 지난 후에 조직표를 보여주며 '너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강원도당 소속이다' '너의 가명은 김형권이다' '너는 조애전 위원장이고 민애전 성원이다'며 들어보지도 못한 말들을 들어대며 협박을 했다.

나에게 폭행과 고문을 일삼은 수사관 중에서 책임자는 이름은 모르지만 별명이 '왈왈이' '멍멍이' '사장님' 등으로 불리고 인상착의는 175cm, 몸무게 75kg 정도의 뚱뚱한 사람이었다.

12일 저녁식사 전까지 7-8명의 사람이 달려들어 벽에 밀어 부치고 벽을 바라보게 한 뒤 양손과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여 손가락 사이에 나무막대기를 끼워 수 차례 비틀었다.

12일 저녁식사 이후부터 13일 새벽까지는 고문수사관이 3개조를 편성하여 번갈아 갖은 폭행과 고문을 자행했다. 1조는 7-8명이 구성되어 책임자를 주축으로 비녀꼽기를 했고, 2조는 폭력구타 전문가인 듯 2명이 담당했고, 3조는 3-4명 수사관이 협박을 일삼았다. 3조의 주무수사관은 김실장이었다. 각 조는 한 시간 가량으로 들어와 구타와 협박을 일삼았다.

13일 오전에는 기합으로 벽을 보게 하고 손을 들고 서있게 하거나 엎드려 뻗쳐, 쪼그려 뛰기 등을 시켰다. 13일 오후에는 앞에서 행했던 폭행고문을 계속하며 '죽여버리겠다'며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곤 했다. 기운이 없어 쓰러지면 물을 뿌려 다시 깨어나게 하고 정신을 차리고나면 성기를 뽑아서 비틀고, 귀두를 치며 성기를 움켜잡고 비틀었다.

성기구타고문은 16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틀동안이나 계속되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자 최소한 구속요건이라도 갖추어야겠다는 판단을 한 듯이 '최호경을 만난 것' '유인물을 받아서 돌린 것'만이라도 인정하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지칠대로 지친대다가 수치스런 고문까지 당한 상태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을 상실하고 그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후 당원임을 시인하라는 요구와 함께 이틀동안 진행되었던 고문이 계속 반복되었다. 5-6일 후에는 결국 자포자기 상태로 모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좌절, 패배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성기귀두뽑기'라는 고문을 당하는 그 순간 발가벗겨진 채로 흉악한 놈들에 의해 육신이 겁탈 당하는 그 순간은 육체적 통증도 느낄 수 없는 분노가 끌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