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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잘난 ‘법’·‘명분’ 덕에

현저동 주민 길거리 나앉을 판


팔순 할아버지를 포함한 가이주단지 주민들이 어처구니없는 법규정과 관청의 '명분' 때문에 길바닥에 나 앉을 처지에 몰려 있다.

지난 94년부터 서대문구 현저동 내 가이주단지(새누리마을)에서 살아온 주민 43가구는 오는 3월이면 '그리던' 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10가구가 '미해당자'라는 이유 때문에 입주허가를 못받고 있다.


1인가구, 임대주택 입주 안돼

10가구 가운데 염만순(48) 씨 등 다섯 가구는 1인 가구(단독세대)라는 이유로 '미해당자'가 된 경우다. 현행 건설법 상으론 1인가구라 하더라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으나, 서울시 조례는 1인가구를 미해당자로 분류해 입주권을 주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조례를 개정해 1인가구에게도 임대주택 입주권을 보장하기로 했지만, 현저동 주민들에게까지 소급적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저동 철거민대책위 위원장 한희중(43·해당자 분류) 씨는 "이러한 방침에 따르면, 부부간에 이혼하거나 자식을 출가시켜 혼자된 사람도 입주대상에서 제외된다"며 바뀐 조례와 건설법에 정해진 대로 1인가구의 입주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영수 씨 가족 등 다섯 가구는 '거주기간'이 문제가 돼 미해당자로 분류됐다. 현행 재개발법은 재개발을 노린 위장전입자를 구분하기 위해 재개발결정고시 3개월 이전에 입주한 세입자에 한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된 가구들은 재개발 시행령이 떨어진 이후 이주를 해왔거나 재개발결정고시 3개월 이전에 주민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미해당자'로 분류되고 말았다. 현재 주민측은 이미 미해당자도 입주한 바 있는 타지역의 사례를 제시하며 구청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구청측은 '명분'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은 남아도 법 때문에 안돼

한희중 위원장은 "전입오는 세입자들에게 법과 조례에 대해 충분한 홍보를 하지 않았던 것부터가 문제"라며 "오랜 기간 꾸준히 그 지역에 살아온 주민들에 대해선 구청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또 "6백가구를 수용하는 현저동 임대아파트엔 현재 2백가구 분량이 남는다"며 "세입자를 위해 임대아파트를 만든 이상,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주민들을 최대한 포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 원(86) 씨는 재개발 시행령이 떨어진 이후 이사를 왔다는 이유와 혼자 살고 있다는 이유 모두에 해당된다. 서대문구청에서 취로사업을 하며 생활보호대상자로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지 할아버지는 "그동안 새누리마을의 따뜻한 사람들이 안부도 묻고 말벗도 되어주었는데 이제는 갈 곳도 없이 이곳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제일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