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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북풍, ‘입조심·몸조심’ 경고

간첩사건 빌미 언론·진보활동 위축 우려

예상하던 북풍이 불어왔다.

안기부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부부간첩단’ 사건과 ‘고청간첩 고영복, 심정웅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기부는 두가지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부부간첩’의 국내활동과 관련해 혐의자 2백여 명에 대한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발표와 일부 진보적 색채의 언론에 대한 경고성 비난 발언이다.

이청신 안기부 대공담당특보는 “일부 특정신문과 잡지가 북한의 대남공작기초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특정신문은 양심수들의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을 광고로 게재하는 등 국민의 건전한 사상을 오염시키고 있고, 무분별한 대북동정심을 부추기고 있다”며 잇따라 진보언론에 시위를 겨누었다. 안기부가 지목한 언론은 <한겨레> 월간<말> <길> 등과 전국연합, 민족회의, 한청협 등 재야사회단체의 기관지들이다. 또한 ‘부부간첩’ 사건에 대한 엠바고(보도통제)를 깨뜨린 <시사저널>을 겨냥한 듯 “일부 언론이 간첩검거 사실을 미리 보도함으로써 수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안기부는 또 “광범위한 좌익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 아래 “1천5백명의 국내 인사가 포섭명단에 들어 있으며, 남파간첩과 국내고첩망에 대한 조사내용을 근거로 관련 혐의자 2백여 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 및 동향 내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안기부는 수사발표에 앞서 진보적 지식인이나 재야단체 활동가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대공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내용의 진술서까지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안기부의 발언은 진보적인 언론 및 활동가들에 대한 공개경고장 또는 향후 공안탄압의 신호탄이라는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 전국연합)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사실이라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입장에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안기부가 이번 사건을 공안정국조성의 계기로 악용해서는 안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사법부가 국가기밀누설(간첩죄)에 대한 엄격한(신중한) 해석을 요구하는 판결을 내린 점에 불만을 표시하며, “간첩에 대한 법해석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향후 공안수사의 강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안기부는 “부부간첩을 신고한 정대연(울산연합 집행위원장)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사실을 공개하는 등 오히려 수사를 방해했다”며 정 씨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검토했음을 드러냈다. 안기부는 또 “정 씨의 신고는 그 순수성이 의심스럽다”고 발언해 전국연합과 울산연합측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전국연합 등은 “정 씨의 기자회견을 매도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