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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영흥도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화력발전소 건설로 주민 생존권 위협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30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섬, 영흥도. 굴, 바지락, 대합 등 풍부한 어자원과 비옥한 땅으로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던 영흥도에 죽음과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총 9백60만 ㎾ 용량(핵발전소 12개, 국내전력공급량의 35%에 해당)에 달하는 유연탄화력발전소 12기가 이곳에 들어서기로 하면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영흥도가 고향이면서 건설현장 일로 외지를 떠돌아다니던 정윤기(26․주민대책 사무국장) 씨는 벌써 1년이 넘게 생업을 포기하고 있다. 화력발전소 반대투쟁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다. 정 씨는 96년 5월 고향선배들과 함께 무비카메라 한 대를 들고 보령․서천․영광․울진 등의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 때 만난 보령 주민들이 “절대 못 짓도록 막아야 해요. 우리는 죽지 못해 살아요”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본 이후 정 씨는 이번 싸움에 발벗고 뛰어들게 되었다.

발전소 건설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해양생태계의 파괴다. 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온배수는 평균수온보다 7도 이상 높고, 1일 배출량이 한강물의 1.5배나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온배수가 바다로 유입될 경우, 플랑크톤의 생존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물로, 이곳에 서식하는 바지락, 굴, 낙지 등의 멸종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민들에게는 생존수단의 상실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농사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정윤기 씨는 “발전소 주변에 자주 발생하는 안개는 농작물의 성장에 피해를 줘, 수확량의 50%나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민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이다. 또한 화력발전소의 건설은 영흥도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근의 덕적․자월도 등도 온배수 배출에 따른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발전소 12기가 모두 가동될 경우 발생될 아황산가스(서울시 전체 배출량의 1.5배로 추정)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타고 전국을 누비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영흥도 주민들에게 이번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제쳐두고 할머니들이 직접 몸싸움을 벌여가며 공사를 막고 있다는 사실은 현 사태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흥 주민들은 지난 5월 17일부터 인천시 답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번 농성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은 사묵국장 정윤기 씨다. 마을 어른들이신 주민대책위 공동대표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벌써 7살난 큰딸과 세 살박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정 씨가 가족부양의 부담과 부모님의 만류마저 물리친 채 투쟁에 참가하는 까닭은 무척 단순하고도 당연하게 들린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다. 아이들한테도 떳떳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