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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집시법, ‘보호법’인가 ‘탄압법’인가

시위용품 시비에서 참가자격 시비까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 및 시위의 권리의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그러나 이러한 입법정신과는 반대로 여전히 집시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으로 악용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여의도 노동자대회에서 발생한 ‘플래카드 압수 시비’는 그 단적인 예로,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연합 등 사회단체들이 ‘인권수호’의 차원에서 경찰의 자의적인 법해석에 본격적인 법률대응을 펼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련조항 악의적으로 해석

전국연합 민생국의 김남곤, 권기혁 씨는 지난 1월 26일 여의도 노동자대회에서 길이 80m 짜리 대형 플래카드를 경찰에 압수 당하고 그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며 김한조 영등포서장과 최한철 정보과장 등을 강도 및 폭행죄로 남부지청에 고소한 바 있다<인권하루소식 1월 28일자 참조>. 이에 대해 경찰은 문제의 플래카드가 ‘신고되지 않은 불법시위용품’이었기 때문에 압수했다고 밝혔으며, 사건을 조사중인 담당 검사도 ‘고소인들의 행위가 위법하며, 따라서 물품압수와 그 과정에서의 경찰의 행위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인 김남곤 씨에 따르면, 지난 5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종노 검사(305호)는 “한국노총이 집회신고서를 제출할 당시 ‘한총련 등 사회단체가 참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경찰에 제출했다”며, 오히려 김 씨 등이 집시법을 위반했음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김 씨 등이 집회에 참가한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해석인데, 이는 집시법에 대한 악의적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관련조항인 집시법 제4조는 주최측의 입장에서 집회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으로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및 질서유지인은 특정인이나 특정단체가 집회 또는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배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기욱 변호사(전국연합 인권위원장)는 “주최측은 특정단체나 특정인을 배제할 경우, 그 의사를 당사자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이번 경우는 주최측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어떤 단체에도 참가 배제 의사를 전달한 적이 없다. 설령 경찰과 주최측간에 특정인의 배제를 약속했다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이상 집회 참가가 불법행위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플래카드 제작도 불법?

또한 집회 신고와 시위방법을 규정한 집시법 제6조와 시행령 제2조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은 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플래카드의 경우, 경찰측은 해당자들이 관련조항에 따라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기욱 변호사는 “몽둥이나 쇠파이프 같은 폭력시위용품은 불법시위용품이 될 수 있지만, 자발적인 의사표현 방법인 플래카드 제작행위는 불법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 변호사는 “시행령 2조 8항의 ‘기타 시위의 방법과 관련되는 사항’이라는 조항이 경찰의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조항”이라며 “조항의 내용을 구체화하거나 조항 자체를 없애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한편, 경찰의 폭행부분에 대해 담당검사는 고소인들에게 “위법행위를 했으므로 맞아도 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 변호사는 “미신고 물품이라도 강제로 폭행하여 빼앗는 행위는 명백한 강도행위”라고 밝혔다.

전국연합에 이어,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무효화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도 조만간 관련 경찰을 검찰에 고소하기로 했으며, 두 단체는 민사소송 제기 및 검찰에서 사건이 무혐의 처리될 경우 헌법소원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