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5.18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군>은 아마 많이들 보셨겠죠. 저는 한 광주시민이 ‘그때 내가 참 예뻤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1980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또래 청년들과 트럭을 타고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던 때를 회상하며 웃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저도 함께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가장 비극적인 학살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끊이질 않고 현재진행형인 피해자들의 고통이 계속 부정되는 사회에서, 당시 광주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들이 가졌던 쾌감과 웃음은 좀처럼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찰나라고 할지라도, 그 역시 5.18 역사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흔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자신은 없다. 내게 역사라는 개념은 고리타분한 교과서에 갇혀있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기록될 가치가 있는 누군가의 특출난 이야기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의 반복을 발견하고 또 어떤 역사 속에서 나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찾아내기도 하면서, 비로소 그 말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 속에 있다. 언젠가는 나와 우리의 역사가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대용
시키지 않아도 조선왕 순서를 ‘태정태세’를 중얼거리며 외우던, 역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자라나며 어느새 무관심해졌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중세나 고대사와 관련된 논쟁들이 사소한 단서를 갖고 입증하기 어려운 10가지 가설을 세우고 무엇이 맞는지 논증하는 과정을 보며 무엇을 위한 역사일까, 내 길은 아니구나 싶은건 분명하구나 싶었다. 그렇게 십수 년 지나며 내가 보고 겪은 일이 역사의 사건이 되고 해석과 논쟁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보며, 이게 또 재미가 없지만은 않구나 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해미
내 인생에서 ‘역사’를 곱씹을 때가 그리 많진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던 역사는 사실상 암기 거리에 가까웠고… 사랑방에 들어오고 바로 다음 해, 사랑방 30년 맞이 모집사업에 함께 뛰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마주한 사랑방의 역사는 ‘몇 년에 무얼 했고’를 넘어, 그간 켜켜이 쌓여온 동료들의 애정과 신뢰가 비로소 완성시켜준다는 인상을 받았더랬지. 기록을 넘어 ‘기억’되는 역사란 그런 걸까? (물론 사랑방은 기록물도 아주 많답니다)
미류
어릴 때부터(?)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대학 교양 수업으로도 들었는데 시험문제 하나가 날 혼란스럽게 했다. 혁명의 시대였던 몇 년 몇 월 프랑스 어느 지역에 사는 농민 가족이 나눴을 이야기를 적어보라는 류의 문제였다. 수십 년 수백 년을 건너뛰며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그 시간들을 살아낸 삶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달까. 그 후로도 역사책은 즐겨 읽는다. 더 재미있는 질문들이 생겼다.
지수
누구나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며 산다. 내게는 지워진 역사가 있다. 재개발로 없어진 내 등굣길, 친구들과 헐레벌떡 뛰어다니던 골목길 얘기다. 철거 소식에 진심으로 심통이 났더랬다. 그 길목을 지날 때마다 얼마나 승질이 나던지. 거의 뭐… 내게 그 땅과 그 골목길과 그 집들에 내 몫이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내 10대의 역사가 담긴 땅 위에는 5천 세대 아파트가 들어섰다. 도시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일 텐데. 어떤 사람들의 역사를 함부로 지워내지 않는 도시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민선
신입활동가 교육기간 덕분에 요즘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 주제가 있지만 현대사 세미나로 한국사회의 굵직한 흐름들을 쫓아가고, 인권운동과 함께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 90년대 전후 사회운동이 쌓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있어요. 책에서, 강의에서 내 삶의 어느 순간과 겹쳐지는 장면들을 마주하면서 지금 여기에 이르게 된 어떤 연결들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인 듯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써나가는 시간이 어떤 역사가 되게 할 것인지 그려가면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